[농정춘추] 마을 공동밥상이 농촌을 살린다

  • 입력 2019.06.02 18:16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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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엔 모내기가 한창이다. ‘모내기철에는 부엌의 부지깽이도 한몫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농부들에게는 몸도 바쁘고 마음도 바쁜 계절이다. 하늘의 거울이 되어버린 무논에 부지런한 이앙기가 돌아가고 하얀 구름 사이로 여린 모들이 100m 운동장처럼 줄지어 자리를 잡는다. 언제나 그렇듯 이만한 평화로운 풍경이 또 있을까 싶다.

지금이야 모내기하면 이앙기가 먼저 떠오르지만 어릴 적 모내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줄지어 모를 심는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풍경, 모내는 사람들이 함께 먹는 새참이다. 어머니는 모내기 날 하루에 5번의 밥을 준비한 것 같다. 세 끼의 식사와 두 번의 새참. 마을사람들이 모를 심는 동안 어머니는 집에서 쉴 새 없이 음식을 준비해 집과 논을 오가며 새참거리를 머리에 이고서 날랐다.

바쁜 영농철에 여성농민은 가사와 농사라는 이중의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음식 준비도 준비이지만 그 무거운 새참거리를 머리에 이고 논밭으로 다니셨던 어머니를 지금 생각해보면 죄송스런 마음이 한이 없다. 철이 든 후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농사를 지어 여섯 자식들을 키워야 하는 마음으로 새참거리가 아닌 무거운 인생의 무게를 들어 머리에 이셨을 거라 생각이 든다. 허리가 휘고 무릎이 다 나가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이러한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지자체에서는 2012년 무렵부터 농촌마을 공동급식 사업을 시작했다. 농번기 한철만이라도 여성의 가사 부담을 경감시켜 편안히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이다. 전남지역에서 처음 도입된 이 사업은 농촌마을에서 인기가 좋아 전국 지자체로 확대됐다. 충남도는 아직 150개 마을에 불과하지만 전남도의 경우 1,450개 마을에서 이 사업이 실시되고 있다. 참 대단한 인기라고 할 수 있다. 전남도가 2017년에 실시한 주민조사에서도 이 사업에 대한 만족도도 86%가 나왔다고 하니 무척 환영받는 사업임에 틀림없다.

농촌마을 공동급식 사업은 현재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주로 모내기인 영농철 한 달 동안 급식도우미의 인건비만을 지원했으나 지금은 인건비뿐만 아니라 부식비를 지원하는 지자체도 있고 사업 시기도 수확기로 확대하는 지자체도 있다. 식기 세척기를 지원하는 지자체도 있고 몸이 불편해 마을회관에 나오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반찬을 배달해주는 지자체도 있다. 마을 공동급식을 통해 지역 차원의 살핌과 돌봄의 체계가 형성되고 무엇보다 마을주민 간 공동체성과 행복감이 증진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업 또한 한계가 분명하다. 우선 지원 시기가 영농철로 제한을 두다보니 그 외 시기에는 거의 사업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 옛날 모내기철에 모를 내고 새참거리를 날랐던 농부들은 이제 구부정한 노인이 돼 오히려 겨울철에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눠먹을 시간이 많은데 이 사업은 겨울철에는 해당이 안 된다. 그나마 겨울철에는 지자체에서 쌀 몇 포대를 지원해 주민들은 여기에 십시일반 반찬과 회비를 더해 함께 식사를 하지만 이것도 봄철이 되면 부식 마련이 어려워 끊기곤 한다.

영농철 마을 공동급식 사업은 이제 농사와 가사 부담이라는 농업적 관점에서 벗어나 고령화된 마을 주민들의 건강과 복지, 마을공동체성의 회복과 서로 돌봄이라는 마을복지 관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굳이 영농철만이 아니라 그 외 기간에도 마을 공동식사를 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마을 공동급식(식사)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청양군의 한 마을을 대상으로 한 달 동안의 부식비로 100만원을 지원한 적이 있다. 그 결과 29일 동안 하루 평균 23명의 어르신이 식사를 하고도 3만5,950원이 남았다. 한 끼 평균 단가가 1,550원에 불과했다. 마을 어르신들은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이 정도로 가성비가 좋은 사업이라면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 시도해볼만 하다. 물론 주민들도 일정한 역할이 필요하고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있지만 이제는 확대된 마을 공동급식이 필요한 때라 생각된다. 그 많은 마을 개발사업을 하고도 마을 주민들이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먹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최근 각 지자체마다 푸드플랜이 세워지고 학교급식을 넘어 공공급식으로 확대하려는 정부 차원의 계획도 있다. 그런데 마을 공동급식(식사)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논의가 없는 것 같다. 농사에 생의 모든 것을 바치고도 저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농촌마을 어르신을 위해 지금의 정책을 한번 돌아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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