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을 거슬러오르는 해남 푸드플랜

푸드플랜 선도지자체 탐방 ⑧
전남 해남군(농촌형)

  • 입력 2019.06.02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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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생산부터 폐기까지, 먹거리의 전 순환과정을 공적인 영역에서 보장하려는 ‘푸드플랜’이 바야흐로 전국적으로 태동하고 있다. 지역푸드플랜은 농업 생산기반을 다지고 지역 내 다양한 문제를 해소할 획기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지난해 2월 농식품부 지원사업에 선정된 푸드플랜 선도지자체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하며 푸드플랜의 가치와 미래를 가늠해본다.


해남군(군수 명현관)은 전남에서도 손에 꼽는 농업지역이지만 의외로 로컬푸드나 푸드플랜에 대한 지역사회의 인식과 의지가 약한 편이다. 군이 이미 2013년부터 로컬푸드체계 구축을 시도했지만 6년째 선진지견학과 농가교육만을 되풀이할 뿐 성과를 못 내고 있다. 급식이나 로컬푸드 직매장은커녕 그 흔한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매대조차 전무하다. 이는 광작·단작화 돼있는 농업환경과 무관치 않다. 고구마·배추 농사를 크게 크게 지어 산지수집상 등을 통해 도매시장으로 올려보내는 게 해남 생산·유통의 큰 흐름이다.

지역내 먹거리 순환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푸드플랜은 이같은 지역 생산·유통구조에 역행해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큰 줄기는 바꾸기 어렵지만, 해남군은 작은 단위부터 지역순환 기반을 다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행히 해남엔 푸드플랜의 시작점이 될 만한 농민조직이 있다. 한살림 생산자공동체인 ‘참솔영농조합법인(대표 박창윤)’은 전남권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친환경 생산조직이다. 규모가 큰 편이라 해도 22농가 97ha에 불과하지만 연간 해남 친환경채소 생산량의 8할인 1,100톤(300여 품목)을 생산하고 있다. 푸드플랜의 진행 여하에 따라 생산량은 최대 2,500톤까지 늘릴 여력이 있으며, 판로가 문제일 뿐 신규 농가를 유치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해남군 마산면의 나경엽씨가 유기농 붉은감자의 작황을 살펴보고 있다. 고구마·배추 위주로 단작화된 해남 농업이지만 공동체 활동을 통해 푸드플랜의 전제조건인 다품목 소량생산이 유지되고 있다. 참솔영농조합법인 제공
해남군 마산면의 나경엽씨가 유기농 붉은감자의 작황을 살펴보고 있다. 고구마·배추 위주로 단작화된 해남 농업이지만 공동체 활동을 통해 푸드플랜의 전제조건인 다품목 소량생산이 유지되고 있다. 참솔영농조합법인 제공

박창윤 대표는 “예전엔 해남에서도 당근 등을 많이 재배했는데 도매시장 위주 돈 되는 품목으로 바뀌다 보니 소량재배 품목들이 다 사라져버렸다. 농산물 안전성도 문제지만 지역 생산기반도 무너진다. 푸드플랜이 구축돼 지역 내 소비가 되면 농가도 살고 경제도 도는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광작·단작 문제를 떠나 소비보다 생산이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이다 보니 생산량의 대부분을 지역 내에서 순환시킬 수는 없다. 전남 푸드플랜을 통해 도 단위 순환체계를 구축하거나, 재배품목이 상이한 강원지역 시군과 연계해 도시권에 공급하는 방안이 구상되고 있는데 아직은 막연한 수준이다.

다만 적어도 지역에서 필요한 만큼은 기획생산체계를 갖추고 확실한 순환체계를 만들어가겠다는 게 해남군의 방침이다. 이에 해남 푸드플랜의 컨트롤타워가 될 해남푸드통합지원센터(센터)와 해남 최초의 로컬푸드 직매장 건립을 추진 중으로, 내년 6월경 준공될 예정이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다. 군의회 일각에서 경제성과 효율성 문제를 들어 계속해서 비판적 시각을 제기하는가 하면, 그동안 로컬푸드에 일절 손을 놓고 있던 지역농협들이 적극적으로 센터 운영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농협의 업무체계와 조직문화를 감안할 때 비영리적 공익사업인 푸드플랜을 수행할 수 있을지엔 물음표가 붙는다. 허헌중 지역재단 상임이사는 “푸드플랜은 단순한 유통정책이 아니라 건강·안전·환경 등을 총괄하는 종합계획으로, 어느 한 영역을 떠나 모든 행정조직과 다양한 민간단체들의 협업·협치 구조가 돼야 한다. 기존에 생산·유통을 담당해온 농협은 센터의 요청에 따라 물류 부분 역할을 담당할 순 있겠지만 전면에 나설 순 없다”고 조언했다.

최승진 해남군 먹거리전략팀 주무관은 “푸드플랜에 대해 지역 내 합일된 목소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푸드플랜을 경제성 논리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아 힘들다. 예산이 좀 들더라도 급식이나 소외된 계층에서부터 시작해 의미있는 정책으로 만들고 싶은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학계 유력 전문가들은 해남군 지역사회의 푸드플랜 인식 제고를 위해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으며, 해남군은 조만간 푸드플랜위원회에서 재단법인 설립과 농협 운영 중 센터 운영방식을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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