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74] 아, 사과꽃

  • 입력 2019.05.26 21:29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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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자연사랑농원 장원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유기농 사과재배를 12년간 지속하고 있는 양양의 대표 사과농장 주인이다. “윤교수네 사과는 별일 없느냐”고 묻길래 별일 있다고 답했다. “안 그래도 뭔 일인지 몰라 전화 드리려 했다”고 하니 “큰일이구만” 하신다. 올해는 유기농 사과를 학교급식으로 내려했는데 그것도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홍로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과품종이 열매를 잘 맺지 못하고 꽃이 대부분 말라 떨어졌다고 한다.

지난번 일기에 썼듯이 나의 작은 과수원에도 금년엔 사과꽃이 너무 많이 피어 내심 톤 단위 생산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기대가 컸다. 학교급식으로 납품하려고 준비도 했다. 그런데 최근 2~3주 사이에 그 많은 꽃들이 열매를 키우지 못하고 대부분 그대로 말라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지금쯤이면 열매가 콩알만 하게 자랐어야 하는데 꽃 전체가 마르면서 대부분 떨어지니 무슨 일인가 싶어 노심초사 하던 차에 장원장이 전화를 했던 것이다.

꽃이 피기 시작하던 초반과는 달리 꽃이 만개했을 때는 벌도 많이 날아들어 수정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나무의 영양상태도 좋은데 꽃이 떨어지니 그 원인을 두고 이 생각 저 생각 중이었다. 석회보르도액을 딱 한번 연하게 살포해준 것밖에 한 일이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뭘 잘못한 것 같지는 않다.

주변 사과재배 농가들에게 여쭸더니 아뿔싸! 대부분의 사과농장에서도 꽃이 말라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어떤 농가는 자두 꽃도 말라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낙화의 원인은 농가의 잘못이기 보다는 하늘의 잘못(?)으로 모아 진다. 결국 꽃이 떨어진 것은 냉해 때문이라는 데에 대부분 농가의 견해가 일치했다.

사과농사 4년차 만에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상심이 큰 것이 사실이다. 온 정성을 다했는데 단 2주 사이에 희망에서 낙심으로 변하고 말았으니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다. 가슴이 에이도록 아프다. 이렇게 허무하게 올해 사과농사가 끝났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렇게 허망할 수가 없다. 한해 농사를 망쳤을 때의 농민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래서 과수농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며 고도의 기술은 물론 한해 한해 하늘이 도와줘야 되는 매우 위험성이 높은 농사라는 점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또 하나 배우는 것은 귀농한 초보 농사꾼에게 과수농사를 시도해보라고 권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후계농이 아닌 초보 귀농인들에게는 과수농사를 권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귀농한 초보는 과수보다는 일년생 작물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튼 일주일 이상 마음이 아프고 일이 손에 안 잡혔지만, 그래도 나는 기왕 시작한 미니사과 농사이니 내년을 기약하며 남은 기간 나무들을 잘 돌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농민들은 맨날 매년 속으면서 또 농사짓는다”는 선배 농민들의 위로가 힘이 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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