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파격과 상식

  • 입력 2019.05.26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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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의 간곡한 외침이 또다시 부질없는 메아리로 돌아왔다. 양파 수급대책을 세워달라고 800리를 달려온 농민들에게 정부는 고민의 기색도 없이 소비촉진과 수출확대라는 뻔하디 뻔한 대책으로 화답했다.

양파농가들이 청와대 농해수비서관과 농식품부 장관에게 요구한 바는 간단명료하다. 단 몇만 톤의 양파라도 확실히 우선격리를 할 것, 시장에 강한 시그널을 주기 위해 장관이 직접 이를 발표할 것 두 가지다.

벌써 지난 2월부터 농민들이 절절하게 매달려 요구해온 사안임에도 굳이 이를 외면해버린 건 정부가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농민들의 요구를 ‘상식’ 이상의 ‘파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과연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파격일까. 계절을 상징하는 대표작목인 양파가 폭락해 이미 농가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15만톤 과잉량 중 단 몇만 톤을 격리하겠다는 말을 농식품부 장관이 발표하는 건 어떻게 보더라도 파격의 영역은 아니다. 딱히 농민들의 요구가 있지 않았더라도 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조치에 가깝다. 적어도 15만톤 전량 격리 방침을 대통령의 입으로 발표하는 정도는 돼야 파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이후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파격을 선보여 왔지만 사회 최약 계층의 하나인 농민들에겐 일말의 파격도 선사한 적이 없다. 농민들이 소수그룹이고 주목받기 힘든 집단이라는 사실은 단지 우연일까. 그간의 파격이 쇼를 위한 것이 아닌 진심어린 마음씀씀이에서 나온 것이었다면, 취임 2년 동안 방치해 놓은 농업분야에도 어떤 식으로든 한 번쯤 상식이 아닌 파격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농민들과 면담 및 통화를 한 청와대 농해수비서관과 농식품부 장관은 농민들의 당부를 뒤로한 채 나란히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신정훈 비서관·김영록 장관 동반사퇴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금 되풀이되려 하는 것이다. 파격은커녕 상식의 실현조차 버겁기만 한 상황에서, 오히려 상식 이하의 행태가 끊이지 않는 불우한 우리 농업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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