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친구 현석에게

  • 입력 2019.05.26 18:00
  • 기자명 강선희(경남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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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희(경남 합천)
강선희(경남 합천)

20살 풋풋한 청년으로 만나 이제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는 50의 나이가 되었네.

30년의 세월동안 많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고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함께 하는 시간들이었지.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느끼던 순간도 있었고 또 어느 순간은 각자의 삶을 사느라 서로에게 소홀했던 시간들도 있었지.

일반적으로 한 세대를 30년이라 하잖아.

우리도 30년 동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새로운 세대에게 우리의 빛나던 청춘의 나날들을 추억처럼 이야기하는 기성세대가 되었구나.

기성세대라고 말을 하고 보니 약간 씁쓸하기도 하고 아주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몰려오면서 울컥하네.

우리 가장 빛나던 청춘의 시절 30년을 잘 살아왔을까?

매일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

“우리가 잘 살고 있나?”

“나는 잘 살고 있나?”

이 질문의 답을 같은 길을 가는 30년 지기 친구에게서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혼자 웃기도 해.

현석아.

농업을 천직으로 평생을 농촌에서 살기로 결심한 그 순간의 우리 자신을 잊지 않고 열심히 한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요즘이야.

우리 둘 다 양파 한 포기도 심지 않았는데 전국양파생산자협회를 건설하고 나는 경남도 집행을 책임지는 자리로, 너는 합천의 집행을 책임지는 사무국장으로 30년 동안의 통화량보다 더 많은 통화를 하고 있는 요즘, 우리는 새로운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아.

농민회 활동을 하며 생산자인 농민 스스로가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 가격을 결정하고 최저생산비를 보장받기 위해 품목별조직 건설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었는데, 현장에서부터 양파생산자조직을 건설하자는 양파농민들의 소리가 조직건설로 현실이 되고 있어.

아직 우리의 준비정도가 낮은데 농민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주인으로 나서는 지금.

너와 나, 우리는 매일매일 현장의 소리를 듣고 배우며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을 현실로 만들어갈 양파생산자조직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

경남에서 함양, 산청, 합천, 창녕 등 주산지를 중심으로 양파생산자협회를 건설하는 와중에 우리가 사는 합천에 갑자기 우박이 내려 수확기에 접어든 양파농가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됐지.

합천양파생산자협회 사무국장인 너는 우박피해 농가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피해농가와 대책위를 꾸리고 합천군청과 농협을 찾아다니며 조금이라도 피해농가에게 도움을 주고자 수확기에 접어든 메론 하우스를 뒤로 하고 대책 마련에 동분서주하고 있지. 그런 너의 모습에 친구로서의 자랑스러움과 안타까운 마음에, 나 또한 우박피해농가에 도움이 되고자 여기저기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어.

친구야.

세상을 바꾸겠다고 그 길에 평생을 걸겠다고 다짐하며 시작한 우리의 30년이 헛되지 않았다는 믿음이, 새로운 세대를 청춘의 기상으로 살아가리라는 확신이, 우리에게 다시 30년을 살 동력이 되지 않을까?

우리가 선택한 농민운동의 길에서 우리는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의 시절을 살고 있잖아.

슬픈 현실이지만 우리의 아래가 들어오지 않는 농촌에서 늘 청춘의 기상으로 사는 청년농민의 삶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새롭게 배우는 오늘이야.

오늘도 혼자가 아니라 많은 농민회 형님들과 여성농민회 언니들과 울고 웃으며 희망을 만드는 농민의 삶을 우리 다음 세대도 이어갈 수 있도록 힘차게 만들어가자.

같은 길을 가는 동지로서 네가 옆에 있어 다행이고 항상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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