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멸위기’ 토종목화의 희망
‘절멸위기’ 토종목화의 희망
  • 강선일 기자
  • 승인 2019.05.26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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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한국의 목화농업이 절멸 직전 상태에서 버티고 있다. 개방농정 하에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수입 면제품, 국내의 자생적 면직물 공업 단절, GMO 문제로 목화농업은 어려움에 처해있다. 한국 목화농업의 현실과 목화농업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내 혼자 밖에 안 남아삣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에서 35년째 유기농 목화를 재배하는 임채장(66)씨. 그가 목화농사를 시작하던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마을마다 최소 3~4농가는 목화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목화농가는 점차 줄어들었다.

“1990년대 초까지 점차 목화농사를 관두는 사람들이 늘었다. 인자 함양·산청 통틀어 내 혼자 밖에 안 남아삣다.”

임씨가 1984년 목화농사를 시작한 건 “목화농가가 줄어드는 판에 내라도 목화농업을 지키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임씨는 현재 옆동네 산청군의 문익점 목화시배지에서 목화종자를 받아 농사짓고 있다.

산청·함양 일대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목화 생산지로 꼽혔다. 고려 말기 삼우당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서 갖고 온 목화종자를 한반도 기후에 적합한 개량종으로 만들어 시범 재배한 곳이 산청군이었다. 조선 초기에 세종대왕은 북방 면업 확대정책을 통해 한반도 남부에서 자라던 면화의 재배범위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목화농업은 일본에 면제품을 수출할 만큼 조선왕조의 기간산업으로 성장했다.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이후 목화농가들에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의 값싼 잉여농산물이 대거 남한 땅에 들어왔다. 1955년 한국 정부는 미국과 잉여농산물 도입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값싼 미국산 면화를 남한 땅에 대거 들이밀었다. 농민들은 면화를 생산해도 팔 곳이 없어졌다. 남한의 토착 면화농업은 이때 절멸하다시피 했다.

임씨는 “요샌 미국 뿐 아니라 인도나 중국 등에서도 캐시미어를 비롯한 각종 화학면이 수입되고, 수입된 오리털 이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도 많다 보니 더더욱 국산 목화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목화농업을 지키는 사람들. 경남 함양군 유기농 목화재배 농민 임채장씨가 최근 포트에 심은 목화모종을 둘러보고 있다(위). 지난 21일 경기도 안성시의 마지막 남은 솜틀집 주인 김대환씨가 조면기를 살피고 있다(아래).
우리 목화농업을 지키는 사람들. 경남 함양군 유기농 목화재배 농민 임채장씨가 최근 포트에 심은 목화모종을 둘러보고 있다(위). 지난 21일 경기도 안성시의 마지막 남은 솜틀집 주인 김대환씨가 조면기를 살피고 있다(아래).

목화농업 쇠퇴에 사라져가는 솜틀집

경기도 안성시에 단 하나 남은 솜틀집 주인 김대환(63)씨. 그는 3대에 걸쳐 이어져온 솜틀집을 30여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솜틀집은 목화솜에서 씨앗을 분리하거나 솜이불을 제작하고, 헌 솜을 새 솜으로 되살려내는 등의 작업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목화밭과 함께 목화가 살아 숨 쉬는 또 하나의 터전이다. 농민들은 재배한 목화를 솜틀집에 갖다줬고, 서민들은 솜틀집에서 솜이불을 구했다.

김씨의 솜틀집에도 조면기, 즉 목화씨앗을 솜에서 분리해 내는 기계가 있었다. 50년 이상 된 조면기는 국산 기계였다. ‘신(信)자표 솜틀제조소’라는 업체명이 기계에 쓰여 있었다. 김씨는 “이젠 이런 국산 조면기를 만드는 기업도 찾아보기 힘들다”며 안성에 유일하게 남은 조면기라고 설명했다.

30여년간 솜틀집을 운영하다 보니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쌓였다. 과거엔 패물, 반지 등 가족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의 도난 방지를 위해 솜이불 속 솜에 숨기는 경우가 많았다. 김씨는 “어떤 집에선 누군가가 ‘야한 비디오’를 숨겨놓은 솜이불을 솜 갈아달라고 보내왔다. 숨긴 사람이 깜빡한 건지, 숨긴 사람의 다른 가족이 보낸 건지는 지금도 궁금한데, 이걸 주인에게 찾아주겠다고 하기도 난감하다”며 솜틀집 한구석 상자에 들어있던 ‘야한 비디오’ 테이프를 꺼내보였다.

목화농업의 감소는 자연스레 솜틀집 감소로 이어졌다. 원래 김씨의 솜틀집이 자리잡은 거리에만도 5군데의 솜틀집이 더 있었고, 안성 전체로 봐도 10여군데의 솜틀집이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솜틀집은 모두 문을 닫고, 오직 김씨의 솜틀집만이 남았다. 솜틀집의 폐업에 따라 국산 조면기를 만들어 공급할 업체들도 점차 사라졌다. 목화농업의 붕괴는 이처럼 목화와 관련된 토착 면직물 산업에도 타격을 끼쳤다.

솜틀집이 사라지면 목화씨앗을 솜에서 분리해 내는 작업도 못하게 된다. 솜이불의 솜 재생도 어려워지기에, 솜이불을 가진 가정에선 솜이불을 버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더더욱 수입면 이불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김씨도 이 일을 언제까지 할지 알 수 없다. “혹시라도 후계자를 키울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손사래를 쳤다. “기계가 고장나든, 내 몸이 고장나든 둘 중 하나라도 고장나면 이 일은 그만둘 생각이다. 안성시에서 전통산업 보전을 위한 지원을 하겠다고 몇 년째 말하는데 말 뿐이다. 그나마 가끔 멀리서 막걸리 들고 사오는 손님들의 ‘솜틀집 문 닫지 말고 계속 운영해주세요’라는 응원 때문에 계속 하고 있다.”

이젠 GMO까지 골치 썩이네

임채장씨는 최근 산청 문익점 목화시배지에서 들여온 목화종자의 GMO 여부 조사를 국립종자원에 의뢰했다. 국립종자원은 “포트에 갓 심은 목화 중 일부에서 GMO 양성반응이 나타났다”는 결과를 지난 20일 통지했다. 목화농가들은 농사를 5월 중순에 시작한다. 농사 시작 시점부터 일부 종자에서 GMO가 검출돼 임씨로서는 속이 쓰리다.

문익점 목화시배지의 관리자들은 매년 목화종자를 전남 목포시 임업시험장에서 받아온다. 대부분 국산 재래종 목화 위주로 들여온다. 그러나 최근 수입목화가 대거 들어오는 과정에서 일부 GMO 목화가 각지로 퍼졌다. 목화시배지에도 그 과정에서 GMO 목화종자의 비의도적 혼입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는 게 관계자들의 입장.

2017년 11월 목포시 고하도에서도 213개의 조사대상 면화 개체 중 36개체에서 GMO 양성반응이 나왔다. 해당 목화는 미국 몬산토에서 개발했던 MON531 품종인 걸로 드러났다.

이영복 산청 목화시배지전시관 관장은 “국내 목화농업 기반이 무너지고 수입면이 대거 들어오는 상황에서, 독성 제초제로 물든 GMO 목화까지 같이 들어오고 있다. 이로 인한 국내 생태계 교란과 농가 피해가 우려된다”며 “목화시배지에서 발견된 GMO 목화에 대해서도 폐기처분할 예정”이라 밝혔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목화농업은 여전히 절멸위기이지만 희망은 남아있다. ‘입을거리’에 대한 사회적 관점이 변화를 보이기 때문이다.

박호진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사무국장은 “최근 입을거리 분야에서도 그 동안의 ‘패스트패션’, 즉 과소비와 자원 낭비를 부추겨 온 의(衣)문화를 전환해야 한다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다”며 “젊은 귀농인들 중에도 소규모로나마 유기농 목화농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와 함께 목포의 한 목화 재배농민은 1만주의 목화를 구해 300~400주씩 학교에 나눠주는 활동을 진행했다. 이젠 아이들의 의생활 교육 및 ‘농업에 기반한 의류’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임채장씨도 최근 함양·산청·거창 등지의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목화농사 교육을 진행 중이다. “교육을 통해 학생들도 목화농사와 의생활의 연관성에 대해 알아가는 게 뿌듯하다”는 임씨는 “지역 교육기관들과 지속적으로 목화농사 관련 교육 추진을 논의할 예정”이라 밝혔다.

‘토종 솜이불 매니아’들도 여전히 있다. 김대환씨는 “수입면 이불 덮다가 토종 솜이불 덮은 사람들은 토종 솜이불의 부드러운 감촉과 가벼움 때문에 수입면 이불 다시는 못 덮겠다고 한다”고 밝혔다. 임채장씨도 “수입 목화솜의 경우 농약 문제 및 수입 과정의 약품처리 문제도 배제할 수 없다”며 “우리 목화솜은 유기농 방식으로 만드니 그런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말했다.

산청 문익점 목화시배지에서도 향후 농촌진흥청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토종목화 종자보급을 대대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영복 관장은 “앞으론 100% 전면적으로 각지에서 수집한 국내 재래종 목화만 이 일대에 재배하고자 한다”며 “최근 미세먼지 악화와 관련해 마스크 수요가 늘어나는데, 장기적으로 토종목화 보급 및 재배를 늘려 국산 면으로 만든 마스크의 보급을 늘리는 데 대한 계획도 갖고 있다”며 산청 목화로 만든 마스크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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