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농업의 시대가 온다

  • 입력 2019.05.26 18:00
  • 수정 2019.05.29 09:58
  • 기자명 심증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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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

개방농정 이후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규모화, 기계화된 농업에서 벗어나 중소농, 가족농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들어 가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21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들녘에서 농민들이 품앗이를 통해 모를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개방농정 이후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규모화, 기계화된 농업에서 벗어나 중소농, 가족농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들어 가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21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들녘에서 농민들이 품앗이를 통해 모를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네덜란드의 농촌사회학자 얀 다우 판 더르 플루흐 교수는 그의 저서 ‘새로운 농민’에서 “인류역사에서 이처럼 농민이 많았던 적이 없었다”면서 “가장 보수적인 추정치도 약 5억에서 5억6,000만개의 농민농장이 있다고 보는데 그 수가 계속 늘고 있다”고 밝혔다.

농민이 줄어들고 농촌이 공동화돼 가는 우리 현실에서 공감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아니 농민이라는 단어조차 농업인으로 대체돼 사그라지고 있지 않은가.

1990년대 전면적 농산물 개방에 맞춰 우리 농업에선 경쟁력 강화가 농정 최고의 목표가 됐다. 이제 우리는 농업이 농촌공동체를 유지하며,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전통적인 가치와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수입농산물에 대응해 좀 더 값싸고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자 최고의 선이다. 이를 위해 규모화, 기계화, 시설화로 치달아 왔다. 그렇게 30년을 달려왔지만 여전히 우리 농업은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즈음 수천 년간 아무 의심도 없이 사용하던 농촌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을 부르는 ‘농민’이라는 말 대신 ‘농업인’이라는 말이 법률적 용어로 자리를 차지했다.

농민들에게 전문직업인의 자긍심을 심어준다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사실은 ‘농민’에 담겨있는 역사성과 계급성을 거세하기 위한 보수정권의 음모가 그 바탕에 있다.

애석하게도 관공서에서부터 사용하던 ‘농업인’이란 말은 농민단체 대표들도 마치 ‘농민’이라는 말 보다 한 단계 더 고급스런 표현인양 사용하고 있고, 이제는 일반명사처럼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농민도 사라지고 ‘농민’이라는 말도 사라지고 있지만 세계는 지금 ‘농민농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이 흐름은 사실 우리나라 곳곳에서도 늘어나는 중이다. 개방화, 규모화에 맞서 농촌공동체를 유지하고 복원하며 농촌사회를 지탱하는 농민 수가 증가하고 있고, 중소농, 가족농들이 하는 전통적인 농사형태가 바로 농민농업인 셈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농업 자원을 형성·관리하고, 시장을 피할 수는 없으나 시장에 예속되지는 않는 농사를 지으며, 농촌 환경과 지역사회를 돌보고 가꾸면서, 보람과 긍지를 찾는 이가 새로운 농민, 그런 삶과 농사가 농민농업이다”라고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정리했다.

개방농정 30년이 흘러 누구나 농정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간 농민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자본과 농자재 고투입 중심의 경쟁력 농업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개방농정은 농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실패한 농정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이제 새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 세계 각국의 농민들은 자발적으로 농민농업을 통해 농촌의 희망을 확산시키는 중이다. 자본으로 규모를 키운 농업에 밀려 머지않은 미래에 소멸될 것이란 우려와는 다르게 끈질긴 생명력을 자산으로 한 농민들은 새로운 시대, 농민농업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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