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헌의 통일농업] 기후변화 대응 한반도농업, 남북이 함께 나서야

  • 입력 2019.05.19 18:00
  • 기자명 이태헌((사)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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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헌((사)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이태헌((사)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한반도의 농업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국립기상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열대성 기후대의 경계선이 서울-대전-남원-구미-안동-포항까지 북상했다. 농촌진흥청은 사과를 비롯한 과수의 재배지역이 빠르게 북상하는 것으로 진단한다.

환경부에서는 이처럼 재배환경이 급변하면 벼 생산성이 5~10% 떨어질 것으로 우려한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소나무가 고사하면서 강원과 경북 산간지로 서식지가 국한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국립과학기술원은 이와 관련해 외래 식물과 병해충이 확산될 것으로 지적한다. 특히 국립기상연구소는 태풍과 집중호우, 가뭄 등의 자연재해가 빈번하고 심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농촌진흥청은 지난달 향후 8년간 기후변화 대응방안의 일환으로 농업생산환경의 변동 예측과 평가, 기후적응형 재배·사양기술 개발 등에 대한 연구개발에 2,009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과학기술부가 시행한 2018년 제3차 국가연구개발사업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농촌진흥청이 그동안 준비해 온 농업분야의 기후변화 대응 연구개발사업이 그 타당성을 인정받은 데 따른 것이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타당성 평가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한 농업부문의 이슈와 사회적·경제적 중요성이 깊이 반영된 셈이다. 아울러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를 농업부문에의 이행 필요성이 더해진 결정이라 해야겠다.

농촌진흥청은 10년 동안 추진해 온 농업기후변화 대응체계에 관한 연구개발 사업을 마무리하고, 내년부터는 ‘신(新)농업기후변화 대응체계구축’ 사업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농촌진흥청은 이 후속사업을 통해 세계적인 기후변화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과 이로 인한 농업부문의 취약성을 예측하고, 기회로 활용하거나 피해를 경감시켜 장기적 관점에서 식량안보를 강화하고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 나간다는 구상이다.

이밖에도 이 사업에는 ‘농업기상재해 피해저감 기술개발’과 ‘저탄소 농업기술개발’ 등이 주요 과제로 추진된다. 전국 단위의 정밀실측자료를 기반으로 기후변화 영향 및 취약성을 평가해 예측력을 높이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작목배치와 작부체계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또한 농장단위 기상예측기술을 고도화해 조기경보서비스를 전국 156개 시·군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농업부문의 이 같은 정책은 시의적절하며, 또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한 우리의 농업정책이 한반도농업으로 그 지평을 넓히지 못한다면 절반의 성과에 그칠 뿐이다. 기후변화는 지구상의 온난화에서 비롯되는 요인이 가장 크기 때문에 향후 북방농업을 놓치게 된다면 대안적인 성과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농촌진흥청의 ‘작물재배지 변동내역 연구’에 따르면 평균기온이 1°C 상승하면 재배지가 80km 북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평균기온이 1.8℃ 상승해 대구와 경북이 주산지였던 사과가 포천, 연천 등 경기 북부지역으로 옮겨지고 있다. 또한 축산분야도 고온과 황사로 가축생산성이 저하되고 있으며 호흡기 질환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의 주요 농작물과 축산물이 북방으로 이전하거나 단계별로 연계되는 양상이 향후에는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높다. 기후변화 대응전략을 통해 기술개발과 작목재배치를 고려한다면 남북이 함께 연구개발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또 다른 측면은 기후변화가 초래할 자연재해에 대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북한의 농업생산기반은 자연재해에 대단히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2월 ‘기후변화 속 농업대응 토론회’에서 “기상관측 이래 지난해는 최악의 한파와 폭염을 기록했고, 앞으로 기후변화가 더 심각해질 것을 감안할 때 특히 민감하게 영향 받는 분야가 바로 농업”이라며 “전문가들과 함께 중장기 대책을 적극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재해를 예방하고 신속하게 복구하는 일에 대해서도 이제는 남북이 협력을 해야 할 시점이 됐다.

현재 북한에 상주하는 UN조정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012년 평안남북도에서 폭우로 인한 홍수피해로 231명이 사망하고 21만2,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을 비롯해 이듬해 2013년에는 이 지역에서 189명이 사망하고 80만명이 수해를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2014년에는 지역별로 18개월 동안 가뭄에 시달렸고, 2015년에는 황해남도와 함경남북도, 나선시에서 태풍 고니의 피해를 크게 당했다. 이 때문에 나선 시에서는 2만2,000명의 수재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함경북도에서 집중호우 때문에 138명이 사망하고 68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017년에는 황해도, 평안도 일대의 곡창지대에 가뭄이 발생해 6월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지난해인 2018년에도 폭염과 홍수가 겹쳐 강원도와 황해남북도에서 농사를 망친데다 1만1,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1만7,000ha의 농경지가 파괴된 것으로 조사됐다. UN조정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7년 동안 매년 잇단 자연재해에 크게 시달렸던 셈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다음 세대의 농업을 준비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농업은 타 산업에 비해 기후변화에 취약하기 때문에 빈번해지는 재해를 수습하기도 쉽지 않다. 남북이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한 한반도농업을 구상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남북은 ‘기후변화대응 공동위원회’와 재해경감을 위한 ‘재해대응 공동협의체’를 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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