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이 땅의 농민이라면

  • 입력 2019.05.19 18:00
  • 기자명 강흥순(충남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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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흥순(충남 부여)
강흥순(충남 부여)

하늘을 알아야 합니다. 풍백우사 급은 아닐지라도 비 오시고 바람 불고 눈 오시고 서리 내리는 것쯤은 파종 때부터 추수에 이르기까지 일기예보 수준 이상을 터득해야 합니다.

땅도 알아야 합니다. 무르고 찰진 흙의 성질과 마르고 질은 땅의 습성은 물론이요, 물이 고픈지 빛이 많은지 부처님 손바닥에 노니는 손오공이 어디로 도망치는지 알아채듯 꿰차야 합니다.

생태를 익혀야 합니다. 온갖 벌레들의 생리와 방제, 숱한 양분들의 조화와 배합, 각종 작물들의 성장과 결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터득이 없이는 어디 가서 농사의 농 자도 말하지 마세요.

경제도 득해야 합니다. 추수와 결실의 시기를 언제로 잡아서 씨를 뿌릴 것인가는 물론, 이번 작물이 전국적으로 어느 시기에, 어디로 출하를 해야 이익이 큰지, 손해가 적은지 점쟁이 빤쓰를 입고 있듯이 빼꼼히 바라봐야 합니다.

모든 농민은 기술자이기에 갖가지 기계를 다뤄야 합니다. 화물차는 물론이요 트랙터, 경운기, 관리기, 예초기, 건조기, 동력기, 용접기를 다뤄야 하며 전기와 지하수, 열등과 전압, 자동개폐기와 누전기, 전기의 삼상 등등 그 모든 기계와 전기와 전자의 기초지식을 넘어 전문가의 이마빡을 칠 정도가 돼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적 관점과 소양입니다. 먹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 직업이 농업이고 앞으로 인류가 사라지기까지 남아야 할 일꾼도 농민입니다. 그 숭고하고 위대한 직업이기에 얼마 전까지 ‘농자천하지대본’이라 불렸던 것입니다.

쌀이 하늘이고 밥이 해방이며 먹이의 나눔이 평화이지 않은가요? 이 영광스러운 일인 농사가, 이 찬란한 직업인 농업이 지금은 무엇으로 남았나요? 멸시, 천대를 받고도 모자라 누구하나 농사를 지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농촌의 현실은 어떤가 보면, 우리 동네만 해도 쉰 살 초반이 막내이고 초등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 한 명이 없습니다. 귀농, 귀촌을 하는 이들도 최소 육십 줄이며 심지어 우리 옆 동네에는 성하게 두발로 걸어 다니는 이가 한명도 없는 실정입니다.

이 참담한 좌절과 분노와 슬픔과 아픔을 이기는 것이 농부입니다. 이 걱정과 불안과 소름과 경악과 고통을 넘어서는 것이 농민입니다.

오늘도 농민의 흰머리는 더 늘고 이자와 빚도 함께 늘어나지만 하늘과 땅과 생태와 경제와 각종 기술의 철학을 깨우친 자인 농민이 살아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이 땅에 가장 가난하지만 가슴을 열면 제일 깨끗한 빛과 바람이 쏟아져 나올 농민들이 있기에 우리는 밥을 먹고 과일을 깎고 생선을 구우며 회를 떠먹고 달걀을 지지고 고기를 볶고 배를 두드리며 살아 숨을 쉽니다.

가난하지만 힘들게, 불안하지만 뜻 깊게 멀리보고 길게 살며 모든 어려움을 붙안고 버티는 이 땅의 농민들을 뜨겁게 안아주고 더욱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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