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씨앗 들이는 봄

  • 입력 2019.05.19 18:00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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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보이는 대로 있는 대로 씨앗을 들이고 모종을 심고 혹시나 하늘 한 번 쳐다보다 다시 물을 주고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겨우내 풀숲에 숨어 있었을까 진딧물은 어디에서 그리 많이 나왔을까? 무당벌레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크기도 전에 다 빨아버리면 안되는데 싶어 손가락으로 쭈욱 개체수를 줄여본다. 이 일 저 일 호떡집에 불난 양 바쁘기 그지없다.

지난 4월부터 언니네텃밭 생산자로 처음으로 농산물을 내기 시작했다. 신랑이 “빠끔살이 시작했네”란다. 그야말로 빠끔살이 농사를 시작한다.

상추쌈을 먹다, 아욱국을 끓이다, 완두콩 밥을 하다, 함께 먹이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언니네텃밭 소비자들이다. 이것저것 꾸러미 싸듯 택배를 보내다 보니 정신은 없지만 딸 셋의 입이 미어터지는 모습을 보며 입가에 미소가 번지듯 상상만으로도 즐겁기만 하다.

돈이 되지 않을 거야, 이정도 심어서 누구 입에 풀칠하게…. 때를 못 맞추어 어렵게 구한 씨앗을 한 톨도 건지지 못한 해도 있었으며 애써 농사를 지어도 어떻게 정미를 하지 못해 닭들의 모이가 되기도 했으니 토종농사는 나를 주눅들게 하는 주범이었다.

토종씨앗 심으려다 주객이 전도 되는 거 아니냐?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 속에 씨앗들도 나름 오기가 생겼는지 몇 포기 심었던 씨앗들이 포기하지 않고 쑥쑥 자라 그 양이 늘었으니 이제 어엿이 이름을 걸고 시장에 선보이게 될 정도가 됐다.

얼굴있는 생산자와 그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들의 만남은 토종농사를 다시 시작하기에 충분하다. 텃밭에 무언가를 심고 계시는 분들을 보면 밭고랑을 비집고 들어가 무얼 심으시는지 여쭤 보는 게 버릇이 됐다. 그리고 한두 알 정도 저에게 나눔해 주세요, 염치없는 주문을 하면 대부분은 한두 알이 아니라 한두 줌의 씨앗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바로 돌아와 보이는 대로 심었더니 때를 잘 맞추는 귀신같은 농민이 돼간다. 물론 여전히 스스로 때를 맞추는 건 어렵기만 하다. 굳이 메모해 두지 않아도 스치는 바람만으로도 저무는 해만 보아도 척척 씨앗 들이는 때를 맞추는 농부가 되는 길을 쉼 없이 따라하는 따라쟁이 농부이지만 언젠가 나도 척척박사가 될 거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싶은 마음으로 애써 위안해 본다.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완두콩을 따다 ‘띵동’ 문자가 온다. ‘주문이 접수되었습니다’, 덕분에 얼른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세련된 농부로 변신완료 한다. 6차니 4차니 복잡하기 그지없게 설명하는 농업현장에서 그저 호미 들고 씨앗뿌리다 마음의 거리를 허물게 하는 소비자를 만나게 되는 언니네텃밭! 그 속에서 다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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