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경관보전직불제를 돌아보다

  • 입력 2019.05.19 17:55
  • 기자명 안경아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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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아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공익형 직불제로의 개편 논의가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목적과 법적 근거가 서로 다른 8개 항목의 농업직불제가 시행되고 있다. 앞으로는 공익형 직불제로 개편되며, 기본형과 가산형 등 2개 항목으로 간소화 된다고 한다. 기본형에는 논·밭작물 직불제가 포함되고, 상대적으로 공익적 기능이 높다고 평가되는 친환경·경관보전·조건불리 직불제가 가산형으로 포함될 예정이다.

공익형 직불제는 시장실패 때문에 시장에서 적절한 보상을 받기 어려운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공공편익에 대한 대가를 공공에서 지불하는 것이라고 한다. 농업인의 활동이 다원적 기능을 만들어 낸다는데 공감하지만 막상 지불하려면 그 무엇, 다원적 기능을 규정해야 할 것 같고 또는 측정해서 보여야 할 것 같은 욕구가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라고 측정된 금액은 마음에 와 닿지 않고 선언적으로 보인다. 그 무엇을 당장 규정하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다원적 기능과 지불 간의 부적절한 설정이 오히려 정책의 실효성을 낮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경관보전직불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관은 일정 지역의 고유한 외관이다. 가옥, 농지, 도로, 하천 등 개개의 요소가 결합돼 일체성 있는 외관을 형성한다. 경관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장기간 안목에서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지역 실정에 맞은 경관요소를 발굴하고 보전할 필요가 있다고 관련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관보전직불제는 농업인이 경관작물 식재 활동에 대한 경영비 보전으로 갈음해버렸다. 그렇다보니 경관작물 식재 활동의 경영비 보다 직불금이 높아, 직불금 설정 기준이 적절한 것으로 판단한다. 결과적으로 2005년에 시작된 경관보전불제는 2018년 기준 예산규모가 93억원, 농업직불제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4%에 불과하다. 2016년에는 예산규모가 136억원이었으니, 예산 규모마저도 감소하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농촌 현실에서 경관보전직불제는 노령의 농업인이 유채를 심을지 보리를 심을지 선택하기 위한 요건일 뿐이다. 경관보전직불제는 유채를 재배하는 수입으로 설정돼 트랙터 빌려 밭 가는 비용이 높아지면 타산이 안 맞는다. 경관작물이라 유채 수확을 안 하니 종자를 구하기까지 어려워졌다. 축제가 끝나고 나면 2모작을 위해 갈아엎기 쉬우라고 제초제를 뿌린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심었기 때문에 개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작물의 순환구조는 단절됐다. 마을에 트랙터를 소유하고 보리 심는 농업인이 종자도 대주고 밭도 갈아주고 수매도 해준다면 굳이 유채를 심을 필요가 없다. 노령의 농업인 입장에서는 유채를 심겠다고 시·군과 협약을 맺었어도 올해는 수익이 안 맞으니 변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을경관보전활동비 지급도 어느새 사라졌으니, 경관 정비 활동도 없어졌다.

경관보전직불제와 다른 차원인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 시범사업이 2018년부터 진행 중이다. 농업활동을 농업생산성이 아니라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전환해 생태 보호와 마을공동체에 의해 유지되던 여러 공익적 활동을 촉진한다. 마을에서 내 일도 네 일도 아닌, 그러나 누구나 필요한 다양한 환경 실천을 선택할 수 있다. 이를 시·군과 농업인이 협약을 맺고 이행한다.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로 선정되기조차 했으니,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경관보전직불제와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성공사례가 되길 바란다.

공익형 직불제는 올해 예정대로 정치적 조율, 예산 확보 및 배분 등 큰 차원의 결정이 되고 나면, 본래 목적을 현실에서 적용할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문재인정부에서 제안된 농정패러다임 전환이 기대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 착근하려면 그 지루한 성장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격렬한 논쟁 다음에는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다. 당장 규정하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고 원칙은 분명하되 조사와 발견을 진행할 인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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