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꾸러미 보내는 날 고민거리

  • 입력 2019.05.12 09:19
  • 기자명 한영미(강원 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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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미(강원 횡성)
한영미(강원 횡성)

5월 첫째주 꾸러미를 보내는 화요일 아침! 공동체 언니들이 작업장으로 들어오시며 “야 오늘 아침엔 하얗게 서리가 왔다야. 옥수수 위로 말갛게 서리가 왔어. 브로콜리 잎이 딱딱하게 얼었다야. 춥다 난로 다시 내와야겠다” 하시며 인사를 한다. 곡우 지나 입하가 지나면 서리가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일찌감치 심어 놓은 작물들이 냉해를 입은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더니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자마자 더워죽겠다는 말들이 오고간다.

해마다 이런 현상은 있어왔지만 매일 아침 언니들은 날씨에 민감하다. 그래도 입하가 지나서 아주 심어야 냉해피해를 입지 않을 터인데 주위 분들의 농사일이 점점 빨라지니 덩달아 언니들 농사도 빨라지고 있다.

아침·저녁으론 꽤나 쌀쌀하지만 대낮엔 맨 얼굴로 나가기 힘들 정도로 햇살도 따갑고 무더운 요즘 모내기 준비로 한창이다. 트랙터 소리가 왕왕 들리기 시작하면서 써래질한 논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니 곧 모내기도 끝날 것이다. 날씨에 적응을 잘 하시고 있는 건지 해마다 모내기하는 시기가 앞당겨지는 것은 물론 밭작물도 빨리 심게 되는 것이다.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90년대 초 땅이 녹자마자 밭을 갈고 심는 게 완두였다. 그땐 3월말에서 4월초에나 심었는데 언니들 중 한 두 분이 2월말에 심었단다. 남들이 뿌리니 안 할 수가 없었단다. 예전 같으면 된장, 고추장이나 담그고 긴 밤에 씨앗이나 고를 시기에 씨앗을 뿌린 것이다. 남들보다 좀 더 일찍 수확해야 조금 더 나은 값에 완두를 낼 수 있기에 빨리 심는다는 건데 누구나 빨리 심으니 돈은 좀 더 벌기야 하겠지만 봄을 일찍 맞이한 만큼 농부님들 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일이 늘어난다. 게다가 기후변화니 이상기후니 날씨에 민감한 농민들은 정신줄을 놓고 있다간 폐농하기 십상이라고 일을 만든다. 봄 가뭄이 시작되고 벌레들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하자 작년 봄 가뭄에 대한 기억이 또렷해서인지, 감자 잎이 뾰족이 올라온 밭이나 마늘밭엔 스프링클러가 돌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농사는 하늘이 하는 일이라는데 가물면 가문대로 비 오면 비 오는대로 순응하며 농사짓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다. 억지로 조건을 맞춰가면서 농사짓지 않으면 농사가 안 되는 상황이다. 이 또한 일이다. 밭가 주위에 개울이 있거나 대형관정이 있는 집들은 자연스레 물을 대서 농사를 짓지만 그렇지 못한 집들은 작년처럼 애만 태우는 꼴이 되지 않을까?

언니네텃밭에선 이런 농사방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보고자 토종과 전통농업으로 농사를 짓는 것에 가치를 두고 기후변화에 따라, 지역의 특성에 따라 농사짓는 농부를 양성하기 위해 농생태학교를 운영하면서 이래저래 애를 쓰고 있다.

밀과 보리농사를 짓는 회원들도 늘고 있다. 아직 강원도 언니들은 밀과 보리농사까지는 안 짓고 있는데 전작으로 밀과 보리를 심어야 하지 않을까? 진달래꽃 필 때 볍씨 넣고, 아카시아꽃 필 때 모내기하면 대체로 제때에 맞춰 농사일을 하면 된다고 어르신들이 알려주셨는데 날씨가 변덕을 부려도 주변경관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농사를 지어야 하지 않을까? 옛이야기 속 어르신들의 지혜가 현재에도 이어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꾸러미 싸는 화요일 춥다가 더운 날! 이래저래 고민이 많아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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