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다방 DJ① 「프라우드 메리」를 아십니까

  • 입력 2019.05.12 18:00
  • 수정 2019.05.15 12:5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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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때 : 2003년 정월

곳 : 서울 도심의 한 레코드 가게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40대 후반, 아니면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진열장을 둘러보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가 한 시간째 흘러나오고 있다. 이윽고 남자가 젊은 점원에게 주춤주춤 다가가 말을 건다.

남자1 : 이봐요, 저어…프라우드 메리 씨디를 사려고 하는데…

점원 : 프, 프라우드 메리…요? 그게 가수 이름인지 아니면 노래 제목인지…

남자2 : (건너편 진열장 쪽으로부터 반색하고 다가오며) 아, 프라우드 메리라고 하셨습니까? 나도 여기 구경나온 사람입니다만 프라우드 메리,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몸 흔들며 노래한다) 롤링, 롤링, 롤링 온 더 리버…

남자1, 2 : (기타 치는 시늉하며 합창) 빠바바 빰, 빠바바 빰, 빠바바 빰빰, 빰바바 밤밤…

남자1 : 아이고, 숨차다. 오리지널은 씨씨알(CCR)이지만, 아무래도 엘비스가 정열적이어서 낫지요. 안 그래요?

남자2 : 허허허. 정열로 치면 탐 존스가 더 다이내믹해서 좋잖아요?

남자1 : 탐 존스는 숨이 차지요. 그런데 조영남이 부른 건 영 아니에요. ‘제비’는 들어줄 만한 데 ‘프라우드 메리’는 맘에 안 들어요.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그게 뭡니까. 프라우드 메리는 엘비스로 들어야 돼요.

남자2 : 아무튼 그 시절의 노래가 참 좋았어요. 손바닥만한 트랜지스터에 검정 고무줄로 약 을 칭칭 감고서 들었잖아요. 얼마나 들을 만한 노래가 많았습니까. 비틀즈가 있었고 사이먼 앤 가펑클이 있었고, 비지스가 있었죠. 아, 롤링 스톤즈도 있었어요.

남자1 : 우리한테는 트윈 폴리오도 있었고 양희은의 아침이슬도 있었지요.

남자2 : 김민기의 친구는 어떻구요. 그러고 보면 노래 하나는 축복받은 세대였지요.

소설가 이선(李鮮)이 1996년도에 발표한 장편 소설 <프라우드 메리를 기억하는가>의 도입부 한 대목을 내 맘대로 뚝 떼어서 대화체로 바꿔본 것이다.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 어느 가수가 부른들, 1960년대 이전에 청년기를 보냈던 노년층 다수에게는 좀처럼 그 음률에 정을 붙여볼 건덕지가 없는, 귀에 설고 경망스러운 소리로 들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레코드(CD) 가게의 그 점원 같은 이른바 ‘서태지 세대’에 해당하는 비교적 젊은 층도, “롤링, 롤링…”을 목청 합쳐 내지르고 이어지는 반주 소리까지 “빠바바 빰…” 어쩌고 흉내를 내면서 흥에 겨워하는 중늙은이들의 하는 짓이, 매우 뜨악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프라우드 메리’는 바로 그 사이에 낀 세대의 문화 코드라 할 만하다. 1970년대에 20대를 보냈던 두 남자가 처음 만났음에도, 노래 제목 하나로 스스럼없이 악수를 나누고, 주변의 눈치도 아랑곳없이 낄낄거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들이 공유한 시간 배경 때문이 아니었을까?

반드시 프라우드 메리 같은, 서양에서 건너온 노래일 필요는 없다. 배호나 이미자의 뽕짝 가요든, 혹은 트윈 폴리오나 어니언스의 이른바 포크 계열의 노래든, 사람들은 한 때 자신이 즐겨 듣고 불렀던 노래를 단순히 노래로서만 추억하는 게 아니다. 그 노래들 속에는 시절을 함께 했던 벗들이 있고, 흐르는 세월의 어느 구비인가에 두고 온 젊은 시절의 고뇌와 사랑이 있다.

트랜지스터라디오마저 구하기 어렵던 그 시절에, 우리가 일삼아 노래를 들으러 다니던 곳이 있었다. 다방이었다. 대부분의 다방에는 예외 없이 ‘뮤직 박스’라는 공간이 있었고, 우리가 신청한 노래를 구수한 입담과 함께 들려주던 디스크자키가 있었다. 그 시절의 다방 DJ 얘기를 해보기로 한다. ‘프라우드 메리 세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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