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헌의 통일농업] 대북 인도적 지원, 지금이 해야 할 때

  • 입력 2019.05.05 18:00
  • 기자명 이태헌((사)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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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헌((사)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이태헌((사)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지난해 여름부터 유엔 산하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북한의 곡창지대에서 농작물의 작황이 부진하다는 얘기를 전해왔다. 가뭄과 고온으로 인한 작물피해가 매우 심하다는 전언이었다. 최근 잇단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에서 식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가 당초 예상보다 심각한 듯하다.

지난달 30일 유엔개발계획(UNDP)은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 그리고 북한 당국 등의 조사를 통해 지난 2018년 북한의 식량생산량이 2017년보다 약 50만 톤이 줄어든 것으로 발표했다. 이는 지난 10년간 국제기구가 추정한 북한의 생산량 추이 중 최저치이다. 북한은 현재 국제기구가 권장하는 비축량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럴 경우 올해부터 바로 심각한 식량부족 사태에 빠지게 된다. 절대적 부족량이 30만톤을 웃돌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이와 관련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지원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기도는 5월부터 두 차례에 걸쳐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울시도 우선적으로 북한의 어린이에게 식량과 보건의료 등의 긴급 지원을 적극 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여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려는 논의가 활발하다.

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확고한 방침을 아직까지 밝히지 않고 있다. 한편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은 올해부터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식량지원을 재개할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기구도 지원계획을 밝히고 있다. 다만 국제기구는 현재까지 필요재원을 다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일관된 원칙과 방식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사실 인도적 지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이중적이라 하겠다. 지구상의 어느 민족보다도 정이 많아 주변 공동체에 대한 도움을 적지 않게 제공하지만 지원 원칙과 방식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다. 인도적 지원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고 깊이 자리 잡았으나 정작 실행이 더딘 이유는 이 엄격함 때문이다.

우리는 급격한 산업화를 통한 성공신화를 갖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도 높이 평가받는 모범적 사례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근면함과 절약, 고등교육, 개혁개방형 경제 등이 중요한 가치와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지원을 받는 대상에게 우리의 가치와 방식을 곧바로 적용하려는 경향이 매우 높다. 심한 경우 인도적 지원에 있어서도 이를 선결조건으로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간혹 인도적 지원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논쟁이 격화되어 진영논리로 비약되는 양상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인도적 지원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은 평화, 인권, 생명 등에 준하는 ‘보편적 가치’에 가깝다. 최근의 조류는 종교, 인종, 국적을 따지지 않으며, 인도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 주목할 뿐이다. 수혜대상 사이에 의존적 태도가 굳어질 수 있다는 논쟁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는다. 인도적 지원으로 인해 부정적 결과를 낳게 되었다는 사례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와 국민에게는 이 보편적 가치를 수행하는 것이 사실상 의무에 가깝다. 국민의 혈세를 인도적 지원에 투입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미국과 여타 6자회담 당사국을 대상으로 전략적 공조를 구축하는 데 주력해 왔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결국 북미관계를 비롯해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와 대단히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당초 우리 정부의 전략적 접근 방식은 옳았다. 유엔의 제재와 미국의 규제를 해소하면서 신한반도 체제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한미공조를 기반으로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그 동안의 과정에서 놓친 것이 있다. 무엇보다 인도적 지원에 대한 원칙과 방식이 부족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남북 간의 개발협력을 지원하고 경협기반을 조성하는 일이 우선적인 전략적 과제였지만 이를 인도적 지원과 함께 추진했어야 한다. 특히 제재와 규제에 관한 포괄적 예외조항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 또는 민간기구와 함께 면밀하게 접근했어야만 했다.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 일관되게 주장할 수 있는 원칙과 방식은 어떠한 정세 하에서도 남북이 긴밀하게 소통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의 노동신문은 지난달 29일 “쌀이 금보다 귀하다”며 “모든 힘을 농사에 총집중 총동원할 것”을 강조했다. 식량난을 타개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북한 당국의 입장을 내놓은 셈이다. 우리 정부가 향후 북한의 식량난을 완화하는 인도적 지원에 나설 경우 무엇보다 적기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제시하는 최소한의 규범을 따르면 될 일이다. 이제 우리 국민은 이에 대한 성숙한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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