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개혁 필요하다’는 말이라도 하게 만들어야”

인터뷰 l 조병옥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입력 2019.05.05 18:00
  • 수정 2019.05.05 21:34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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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뭘 한 게 있어야 점수를 매길 거 아입니꺼?” 문재인정부의 2년 농정에 몇 점을 매기고 싶냐는 우문(愚問)에 대한 조병옥 함안군농민회장(전 전농 사무총장)의 현답(賢答)이었다.

조 회장은 ‘백남기 정신 계승’을 구호로 걸고 2016~2017년 촛불항쟁의 최선두에서 박근혜정권 퇴진을 위해 공헌했다. 촛불항쟁의 주역 중 한 명이자 문재인정부의 첫 2년을 현장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고민이 많다. 지난달 30일 함안에서 조 회장을 만났다.

2017년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문재인정권이 들어설 때 기대가 컸으리라 생각한다.

김영록 현 전남도지사가 처음 농식품부 장관에 취임했을 때가 생각난다. 김 전 장관은 2016년 13만원대로 떨어진 쌀값을 2017년 15만원대로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당시 김동연 부총리가 쌀값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다며 반대의사를 표명했음에도 김 전 장관은 그런 조치를 취했다.

김 전 장관이나 신정훈 전 청와대 농어업비서관 등이 보이는 모습을 보며 기대를 품었던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농업 패러다임의 근본적 개혁에 정부가 앞장서길 기대했다.

그 기대가 무너지기 시작했던 건 언제부터인가?

문재인정권 들어서도 관료들의 벽은 높았다. 특히 2017~2018년 농정개혁위원회 활동 당시 절실히 느꼈다. 농개위의 구체적인 활동을 기획하는 관료들은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외부에서 온 장관이나 비서관 등은 개혁의지가 있었다고 보는데, 그것을 집행하고 추동해야 할 농정관료들은 그런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당시 농개위 내에 분과위원회를 3개 만들었는데, 분과위의 태스크포스 구성 시 농민단체들이 요구하던 사항들을 농식품부 관료들은 전혀 받지 않았다. 자기들이 스케치한 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관료들에게 “이런 식으로 농개위가 구성되면 어떤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김영록 장관과 신정훈 비서관도 사퇴했다. 반 년 가까이 농식품부 장관 자리가 공석으로 남았다. 그때 심경은?

‘희망고문’ 당한 듯한 심경이었다. 상심이 컸다. 만약 경제부총리가 반 년 동안 공석이었다면 어찌했을까? 초유의 농정공백 상태가 초래됐다.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정수장의 자리를 비워놨다는 건, 정부 관계자들 밥을 굶겨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농정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2017년 내내 신정훈 전 비서관을 만날 때마다 이런 말을 했다. “다른 거 하지 말고 대통령 입에서 제발 농업 관련 이야기라도 꺼내게 만들어라”고. “농업개혁이 필요합니다”란 말이라도 하게 만들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 입에서 농업개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게 뭐가 있었나. 지난해 12월 농업계 관계자들과 소년농부를 청와대에 초빙해 보여주기식 행사 치른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이명박도 대통령에 취임했던 해인 2008년 12월 어느 새벽 가락시장을 방문해 “농민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농협은 돈놀이만 하고 있다. 농민이 주인되는 농협으로 바로 세워야 한다”는 말을 했다. 저 발언을 누가 기획했을까 싶었다. 얼마 후 농협이 신경분리 문제를 개혁하겠다고 발표하고, 맥쿼리에 신경분리 관련 용역을 맡기는 등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이명박 농업정책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렇게 직접 대통령이 사안을 언급하고 지시하면 결국 실제 조치로 이어지게 된다. 지금 문재인정부에서도 대통령이 최소한 농정개혁에 대한 입장 표명이라도 하도록 만들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정부의 농업 관료들이 보이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관료들은 농민에 대해 기본적으로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한국 농업과 미국 농업을 비교하며 ‘한국농업은 국제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식의 논리를 기본으로 갖고 있는데, 그야말로 천박한 논리다.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 강행만 봐도 관료들의 농업과 농민에 대한 관점이 다 드러난다. 한마디로 농업이 ‘스마트’하지 않아 청년들이 농촌에 들어오지 않으니, ‘스마트’한 농업을 통해 청년농이 농촌에 들어오도록 하겠다는 게 사실상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의 목표다. 최근의 6차산업 및 스마트팜 등의 개념이 한국농업 발전에 있어 필요한 건 맞으나, 문제는 이 개념이 경쟁력 지상주의적 관점 하에 한국농업의 핵심구호마냥 거론되고 있다. 이는 현장 농민들과 거리가 먼 정책이다.

현장에서 봤을 때 시급한 농업 관련 정책은?

무엇보다 200여가지에 달하는 정부의 간접보조금 사업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직불금 지급을 강화해야 한다. 내가 사는 함안군 산인면 내 3개 마을에 35억원의 보조금이 투입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업으로 지역 농민의 삶이 나아진 건 전혀 없다. 진행하는 사업이라야 수영장 하나, 필요 없는 다리 하나 짓고 끝이다. 금전적으로 투명하지도 않고, 보조금의 대략 3분의 1 가량을 컨설팅업체가 가져간다.

3개 마을에 약 210가구의 농가가 있는데, 35억원을 직접 나눠준다고 하면 한 가구당 1,700만원 가량 돌아간다. 차라리 그걸 직접 농가에 나눠주면 훨씬 박수 받을 거다. 정부가 농민에게 직접지불금 액수를 높이면 농민이 저온창고를 짓든, 관리기를 사든, 비닐을 사든 자발적으로 농업을 영위할 수 있는데, 왜 보조금의 틀 속에서 오히려 농민을 불법 저지르는 사람으로 만드는지 의문이다. 그렇게 생겨난 이윤은 대부분 농산업 업체들로 흘러가는 상황이다.

남북농업 교류 재개와 관련해서도 할 말이 많을 걸로 보인다.

그 문제는 신중하게 보고 있다.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의 복잡한 상황을 생각할 때 당장 교류를 재개하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당장 남북농업 교류 재개와 통일농업 정책을 추진하진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남북공동 식량계획을 설계하기 위한 준비는 미리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의 초심을 되찾았으면 한다. 대통령 후보 시절 “농민은 국민 먹거리를 생산하는 공직자”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초심을 갖고 농정개혁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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