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도매시장, 독과점 구조를 깨자

김기형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 입력 2019.05.05 18:00
  • 기자명 김기형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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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양배추·대파·배추·양파 등 농산물 가격이 모두 폭락해 전국 곳곳에서 농민들의 울분이 높아지고 있다. 자식처럼 키운 농산물이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여, 천직처럼 여겨온 생업을 이어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산물의 기준가격이 만들어지는 곳은 가락시장이다. 가락시장과 같은 공영도매시장에서는 기본적으로 경매 방식을 통해 농산물이 거래된다. 그러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경매제의 취지와 그간의 성과는 일정부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과연 유일한 방법인지 고민할 시점이 됐다.

경매제의 가장 큰 문제는 현재와 같이 가격이 낮게 형성될 경우 모든 피해를 농민들이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도매시장법인에게 농산물을 판매 위탁하고 시세가 잘 나오기를 소망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보낸 농산물 가격이 어떻게 결정될지 아무도 모르는 깜깜이 출하인 것이다. 또한 경매장·경매사·중도매인점포 이송 관련비용은 오로지 경매제 때문에 추가적으로 발생되는 비용으로, 국산 농산물의 가격경쟁력을 잃게 만드는 요인의 하나다.

시장도매인과 상장예외거래 등 경매 이외에 농민들이 자기가 원하는 조건으로 협상해 거래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지극히 제한적이고 예외적이다. 도매시장에서 이뤄지는 거래 대부분이 경매거래라고 봐도 무방하다.

경매를 주관하는 도매시장법인들에겐 수탁독점권이 보장된다. 이는 충분한 경쟁을 시현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낳는다.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들은 세계 일류기업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재무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다 보니 사모펀드 등 투기성 자본의 인수대상으로 전락된 지 오래다. 생산·소비자의 이익 도모를 목적으로 한 공영도매시장의 존립 이유가 무색하다.

최근 이런 문제를 논의하고 제도를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국회 박완주·최재성 의원과 일부 지자체 등이 상장예외 확대, 시장도매인제 도입 등을 통해 경쟁과 유통효율화를 이끌어내고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경매제를 고수하려는 주체들은 생산·소비자의 이익 보호는 안중에도 없이 여론을 호도해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영도매시장에서 경쟁체제 도입을 마치 우리 농민들이 마시면 안되는 독배로 인식시키려 하고 있다.

경매제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상장예외를 확대하고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는 조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같은 개혁적 조치들은 독과점적 수탁권한을 경쟁체제로 전환해 농민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게 된다. 출하선택권이 확대되게 되면 도매시장법인의 출하자 서비스는 크게 개선될 것이다. 농민들은 더 많은 이익과 서비스를 주는 곳을 선택해 출하할 수 있다.

그동안 정치권력이 바뀌어도 농업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늘 부족하고 뒷전으로 밀려났다. 농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일회성 재정지원 성격의 땜질식 처방에 급급했다. 이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제도를 개선하는 데 정책 자원이 집중되어야 한다.

경매제 이외에 여러 거래제도의 문을 열어놓고 출하자인 농민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애초부터 이 기회를 막는 것은 곧 농민들에게서 출하선택권을 빼앗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누구에게도 경쟁체제 도입을 반대할 명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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