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플랜, 먹거리 선순환체계를 꿈꾸다

  • 입력 2019.05.05 18:00
  • 수정 2019.05.05 21:36
  • 기자명 윤병선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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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선 건국대 교수
윤병선 건국대 교수

로컬푸드에서 푸드플랜으로

요즘은 로컬푸드라는 용어보다 푸드플랜이라는 단어를 빈번하게 접하게 되었다. ‘로컬푸드’는 ‘글로벌’, 즉 세계화 된 농식품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 로컬푸드는 기본적으로 기업이 지배하는 현재의 농식품체계에서 생산자(農)와 소비자(食)는 같은 피해자라는 인식에 근거하여 ‘농’과 ‘식’사이의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 거리를 축소하자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2007~8년의 세계적 식량위기는 먹거리에 대한 중요성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어 로컬푸드의 확산에도 이바지했지만, 거대 기업농들의 농업생산 진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들 기업의 농업생산 진출은 농지수탈에 불과했고, 많은 농민은 생활과 생산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으로 기업친화적 정책의 수호자였던 세계식량농업기구(FAO)조차 2014년을 ‘세계 가족농의 해’로 선포하기도 했다. 이는 기업주도의 농식품체계는 식량위기를 더욱 가속화 시킬 것이라고 언명한 것이었고, 세계 여러 지역, 특히 북미와 유럽의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는 다양한 형태의 먹거리 선순환 정책을 고민하게 되었고, 이런 가운데 푸드플랜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등장하였다.

푸드플랜(Food Plan)은 먹거리 계획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외국에서는 먹거리 전략(Food Strategy)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한다. 현재의 농식품체계는 농업과 먹거리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생산-유통-가공-소비(먹거리 접근권)-재활용(폐기)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민과 관을 아우르는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협치를 통하여 ‘단절과 분열의 체계’를 극복하고 ‘선순환의 체계’로 만들자는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 푸드플랜이다.

그러므로 로컬푸드와 푸드플랜은 별개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로컬푸드를 보다 통합적으로 지역을 매개로 진행하고자 하는 것이 푸드플랜이라고 할 수 있다.

푸드플랜의 몇 가지 키워드

로컬푸드 운동이 그런 것처럼 푸드플랜이 우리 사회의 농업문제와 먹거리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처방전은 아니다. 그러나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우리의 농업문제와 먹거리문제를 생각해 볼 때,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푸드플랜마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또 하나의 희망의 씨줄과 날줄을 놓쳐버리는 꼴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푸드플랜과 관련된 지자체의 발 빠른 움직임에 대하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중앙정부의 지원사업이라는 이유로 지방정부는 치밀한 목표나 구상 없이 보조금 확보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지역을 촘촘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 푸드플랜인데, 지역명과 통계수치만 바꾼 판박이 푸드플랜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른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동안 지역 내 선순환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해온 많은 주체가 우리나라의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중요한 것은 이들 자원을 어떻게 엮어내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고, 다소 뒤처져있는 지역들은 앞선 지역의 사례를 거울삼아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중앙정부가 푸드플랜과 연계한 패키지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이와 연계한 신활력 플러스 사업도 진행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어느 정부에서도 실시한 적이 없는 농업과 먹거리 통합정책을 통해서 지역 내 선순환체계의 구축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각론에 들어가면 고민의 지점이 많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 거리를 축소해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먹거리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로컬푸드를 보다 통합적으로 진행해 먹거리 선순환체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푸드플랜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은 전남 나주시 광주전남혁신도시에 위치한 나주 로컬푸드직매장 모습. 한승호 기자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 거리를 축소해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먹거리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로컬푸드를 보다 통합적으로 진행해 먹거리 선순환체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푸드플랜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은 전남 나주시 광주전남혁신도시에 위치한 나주 로컬푸드직매장 모습. 한승호 기자

첫째, 진정한 ‘협치’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협치는 민-관, 관-관, 민-민 등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일단 민-관 협치의 경우, 과거에 그래왔던 것처럼 하향식 임명을 통해서 위원회가 만들어진다면 지역민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끌어낼 수가 없다. 농업과 먹거리와 관련한 다양한 분과위원회를 고민하고, 각각의 분과위원회에 관련 농민, 시민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참여 폭을 넓혀야 생산-가공-유통-소비(복지)-재활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공모 등을 통해, 그리고 분야별 단체의 추천을 통해서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관이 민간위원을 임명하는 지명식 위원회로 구성되는 예도 있다. 협치의 정신이 없는 위원회는 의미 없는 조직에 불과하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호불호를 떠나서 지역의 농업과 먹거리를 고민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해야 제대로 된 푸드플랜이 만들어질 수 있다.

위원회에 참가하는 민간진영의 구성뿐만 아니라, 자치단체 공무원의 구성도 깊게 고민해야 한다. 이른바 부서 간 칸막이가 두텁게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먹거리정책의 통합적 추진은 쉽지 않다. 특정 과나 팀이 주도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협치가 이루어질 수 없다.

아울러 민-민의 협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 내 존재하는 다양한 주체들은 갈등과 협력의 양 지점에 서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푸드플랜이 추구하는 지향점과 가치와는 별개로 집단의 이해에 따라 의사표출이 이루어진다면 제대로 된 협치는 불가능하다.

둘째, ‘보충성의 원리’가 충분히 발휘되고 있는가?

현재 먹거리 선순환체계 구축 수준은 지역 간 편차가 매우 크다. 중소농가를 중심으로 한 기획생산을 바탕으로 다품목의 농산물을 공공성을 담보하는 센터 등을 통해서 지역의 학교급식이나 공공급식에 공급하고 있는 지자체가 있지만, 변변한 중간지원조직도 없이 대부분의 학교급식 식재료를 업체를 통해 공급하는 지자체도 상당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을의 주민들을 중심으로 조직화가 이루어지고, 이를 중간지원조직의 매개를 통하여 지역 내 선순환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부족한 부분에 광역지자체가 결합함으로써 해결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푸드플랜에서 이야기되는 학교급식센터나 공공급식센터를 물적 유통시설 정도로 간주하는 몰이해도 존재하고, 기초단위에 대한 고민도 없이 권역센터, 광역센터 이야기도 나온다. 센터는 지역의 먹거리 선순환을 구축하는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다. 창고는 기존에 있던 것을 활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지역 내 자원들을 묶어내는 일이고, 이 일을 하는 것이 센터의 주 역할이다. 물류의 관점에서 센터를 바라보면 지역의 농민은 보이지 않고, 먼 소비지만 보이고, 이렇게 되는 순간 먹거리 선순환은 사라지고 또 다른 이름의 산지유통센터가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기초지자체 단위의 지지부진함이 있다고 광역이 이를 대신해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단위의 역량을 키워내고, 그래서 아래로부터의 묶어내는 일을 광역지자체가 지원해주는 줄탁동시의 지혜가 필요하다.

기초단위의 학교급식센터가 활성화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광역단위의 학교급식센터 1개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지 않냐는 주장도 나온다. 이는 센터를 설치하는 근본취지를 망각한 성과주의 행정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 아래에서 움직여야 만들어질 수 있는 촘촘함을 위로부터, 위에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원리인 보충성의 원리에도 어긋난다.

셋째,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푸드플랜이 퍼지기 이전부터 농업과 먹거리를 고민해 온 주체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동해 오고 있다. 이런 활동들의 결과가 로컬푸드 운동의 확산이나 친환경농업의 확산, 무상급식의 확대 등으로 연결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운동은 지속가능한 사회의 구축이라는 큰 화두 속에서 진행되어 온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운동은 별개 범주에서 활동해 온 것이 아닌 만큼 이를 통합해 낼 필요가 있다.

특히 친환경농업의 경우, 2016년부터 저농약인증이 폐지되면서 급격하게 위축되었는데, 이를 빌미로 ‘농산물우수관리’(GAP)인증이 푸드플랜의 중심에 들어오려는 움직임도 있어서 심히 우려스럽다. 일반 관행농산물보다는 관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진다고 하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생태적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출발의 전제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친환경농산물만으로는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농약의 사용을 전제로 하는 기준이 푸드플랜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이와는 정반대로 ‘친환경급식’이라는 용어에 매몰되어 급식 식재료로는 친환경농산물만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급식 식재료의 안전성은 높여야겠지만, 2010년경을 정점으로 급속하게 축소된 친환경농업을 다시 살려내는 고민은 푸드플랜 속에 담겨야 한다. 완주군의 경우, 친환경인증보다는 약간 느슨한 수준의 실천(저농약+무제초제)을 요구하는 로컬푸드 인증을 시행하면서 로컬푸드 인증 농가에서 친환경인증 농가로 전환하는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2017년 18농가, 2018년 25농가).

푸드플랜이 먹거리 선순환체계를 구축하는 새로운 운동인 만큼 친환경농업의 확산에도 이바지할 수 있으려면 일단은 로컬푸드 인증 등을 통해서 장기적인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먹거리의 안전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이는 일종의 진입장벽으로 굳어져 버린 친환경농업의 제3자 인증제도를 극복하면서, 건강한 먹거리의 지속가능한 생산을 이루는 방법이기도 하다.

넷째, ‘푸드플랜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경쟁력 지상주의를 내걸고 효율 중심의 생산으로 매진하던 정책에서 벗어나서 순환과 상생의 정책을 고민하면서, 중소가족농도 먹거리 생산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이를 더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이들 중소가족농과 지역의 먹거리 수요를 연결 짓고, 더 나아가 지역의 먹거리 빈곤층을 해소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지역농업과 연결 짓는 작업이 푸드플랜이다.

이 푸드플랜이 계획에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체의 형성이 필요하다. 그 주체는 개별화된 흩어져 있는 주체들이 아니라, 가치에 동의하고 함께 하는 조직체여야 한다. 푸드플랜은 농민들의 협동과 자치를 장려하고, 소비자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기제로도 작동해야 한다.

농민들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푸드플랜의 주체이어야 한다. 농촌 내 사회적 경제 주체들 간의 연대가 공고하게 만들어지면 푸드플랜을 통한 관계시장의 사회화가 더욱 폭넓게 이루어질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먹거리 선순환체계도 나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는 먹거리 선순환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다양한 층위에서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그 고민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희망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분들께 글귀 하나로라도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배를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도가 필요하지만, 더 먼저 필요한 것은 바다를 꿈꾸는 일이다(생텍쥐페리).”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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