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농민들의 건강권을 요구합니다

  • 입력 2019.05.05 18:00
  • 기자명 임은주(경기 여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은주(경기 여주)
임은주(경기 여주)

바깥말이라 불리는 우리 반은 열두 집 정도가 작은 골목 이쪽저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두, 세 집은 몇 년 전에 이사 왔고 나머지는 태어나거나 시집을 와 여태껏 살고 있으니 옆집 숟가락이 몇 개 정도인지는 환하게 알 수 있는 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희 집을 중심으로 앞집, 양 옆집, 건넛집에 사시는 시어머니와 아주머님들 이렇게 다섯 분 정도가 가끔은 앞집에서, 왼쪽 옆집인 시댁에서 모이시기도 하셨지만 주로 오른쪽 옆집에서 웃고 떠들고 하셨습니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에 잠이 깰 정도로 가까운 오른쪽 옆집. 겨우내 오른쪽 옆집의 대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한 달 전 해 떨어질 무렵, 마당에 돋은 부추를 베는데 옆집에서 바스락 버스럭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람에 낙엽 뒹구는 소리라 여기고 일을 계속하는데 바스락 버스럭 소리가 계속 납니다. 사방은 어두워지는데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베야 할 부추는 많고 비어있던 옆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잠깐 고민 하다 용기를 내서 옆집 대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전동휠체어로 움직이시던 옆집 아주머님, 서서 갈퀴로 낙엽을 모으고 계셨습니다. 전동휠체어에 앉아 계시던 분이 서서 일을 하시는 게 걱정이 되어 갈퀴를 받아 낙엽을 긁으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느냐 여쭈니 자식들 집에 살다가 답답해서 왔다하십니다.

이후 오른쪽 옆집의 대문은 열렸고 어른들의 소리도 들렸고 저녁이면 누군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사흘 전, 운동 겸 밭에 나가시던 건넛집 아주머님께서 부추 베는 우리 옆에 앉으시며 부추 옆의 풀을 뽑으십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옆집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습니다.

지난 가을, 옆집 아주머님께서 같이 밥 먹고 웃고 떠들던 분들에게 “누구시냐” 묻고 반찬이나 먹을거리가 어디서 난 거냐 하셨답니다. 한 골목에서 50~60년을 이웃하며 똑똑하고 당찬 모습이었던 옆집 아주머니가 멍한 눈으로 누구냐 하셨을 때 받은 충격이 모든 분들에게 너무 컸고 오래갔다고 하십니다.

자식들 집에서도 매일 전화로 밭 관리를 부탁했고 봄이 되니 애가 타서 집에 오셨습니다. 밭에 호박씨 심고 상추씨, 아욱씨 뿌렸는데 뿌린 걸 잊고 또 뿌린다며 씨를 찾으셨다고 합니다. 한 달 정도, 낮에는 요양보호사와 동네 아주머님들의 도움을 받았고 저녁에는 아들이나 며느리가 와 있으면서 어머니를 돌보았는데 더 이상은 안 되겠다 판단하고 다시 서울 딸네집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평생을 농사로 살아오시어 몸에 씨 뿌릴 때와 열매 거둘 때가 각인된, 오남매의 뒤치다꺼리를 마치고도 자식들 걱정이 먼저인, 지혜롭고 당차고 넓은 아량으로 제 가슴앓이들을 들어주시던 옆집 아주머님. 아주머님이, 여성농민이 그동안 고생한 만큼 대접받는 세상은 언제쯤 오는 겁니까?

대충 알기로, 열두 집에 여섯 집이 고령독거가구이고 암이나 중증질환자가 없는 집이 서너 집밖에 없는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외룡리 바깥말에서 여성농민이 대접받는 세상은 언제 오는지 가슴 답답한 의문을 던집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