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청년농업인이 보는 청년농업인 지원정책

“청년농업인은 소외된 동시에
자극적 이미지로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데 지쳤다”

  • 입력 2019.04.23 09:20
  • 수정 2019.04.23 09:21
  • 기자명 김후주(충남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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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주(충남 아산)
김후주(충남 아산)

비교적 어린 나이에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농사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고 하면 숨기려도 숨길 수 없는 깜짝 놀란 반응이 따라온다. 왜냐면 실로 나 같은 케이스가 아주 희귀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자료에선 50세 이상 농림어업종사자 비율이 전체의 85%가 넘는다. 이상하다. 체감으로는 85%가 아닌 99%가 50대 이상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렇듯 멸종위기 관심대상종의 입장이 되다보니 여기저기서 한국농업의 비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답변하기가 참 어렵다. 농업인구절벽 이슈를 넘어 지방소멸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농지도 급감하고 있다. 구태의연한 농업정책은 물론이고 20여 년간 농가소득이 정체되어 있는 척박한 한국농업의 현실에서 희망찬 미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 와중에 정부가 경제기조 골자인 청년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농촌 인구유입 및 활성화를 위한 정책으로 ‘청년창업농 영농정착 지원사업’, 일명 ‘청창농사업’을 시행했다. 그 중에서도 만 18~40세의 독립경영 3년 이하(예정자 포함) 창업농에게 월 80~100만원을 제공하는 파격적 자금지원사업이 경쟁열풍을 일으키며 큰 주목을 받았다. 농업소득만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정착할 수 없는 귀농·창농 청년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였다. 하지만 지원금의 사용처를 두고 ‘싹수 노란 청년농부’라는 선정적 보도가 시작되며 논란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이 논란은 외부에 ‘청년농부들의 도덕적 해이와 세금낭비’로 비춰졌고 내부에서는 ‘지원금을 받지 않아도 될 금수저들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진짜 문제는 후자다. 부족한 제도는 고치면 되지만 동료들에 대한 불신과 반목을 해소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청년, 그리고 농업인의 스펙트럼은 너무나 다양하다. 각자 필요한 점들이 질적으로 다르다. 이런 다양한 정책수요에 부응하지 못한 채, 성공신화 시나리오를 통한 전시효과만을 기대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다. 밥 한 그릇을 걸고 열 명의 아이에게 경쟁시키는 꼴이다. 이때 싸우고 서로 미워하는 아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릇 열 개에 밥을 나눠 담았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청년농업인은 이미 소외되어 있는 동시에 자극적인 이미지로서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것에 지쳐있으며 심지어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도 경쟁하느라 소진되고 있다. 정부가 청년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안일하고 천편일률적이다. 청년들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다양한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등급/계급화를 통해 ‘될 놈에게 투자하고 투자한 만큼 회수하겠다’는 방식이다. 더군다나 도시청년들을 지원하는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급하게 농촌에 이식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적어도 농정에서는 협력과 상생의 가치를 경쟁보다 우선할 수 있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를 건설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청년농업인들의 적극적이고 강력한 정책 피드백과 다양한 요구들, 부조리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논의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청년농업인에게 한국농업의 비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으시면 청년들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다양하고 새로운 가치를 탐구하고 있기에 이 변화에 사회가 발맞추어 준다면 희망 편에 걸어볼 수 있지 않겠냐고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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