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는 농민에게

  • 입력 2019.04.21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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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최근 잇달아 보도된 국회의원들의 농지투기 실태를 보며 농민들이 느꼈을 박탈감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농지는 농민에게!’ 명약관화한 이 말이 실현되는 세상이 바로 정의로운 사회 아닌가. 사진은 지난 17일 전북 장수군 비행기재에서 내려다본 산서면 일대의 농경지 모습이다. 한승호 기자
최근 잇달아 보도된 국회의원들의 농지투기 실태를 보며 농민들이 느꼈을 박탈감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농지는 농민에게!’ 명약관화한 이 말이 실현되는 세상이 바로 정의로운 사회 아닌가. 사진은 지난 17일 전북 장수군 비행기재에서 내려다본 산서면 일대의 농경지 모습이다. 한승호 기자

충북 단양의 한연수씨는 2007년 유기농 사과 재배를 위해 20년 기한으로 농지를 임차했다. 경지정리를 조건으로 12년 무상, 8년 유상임대 계약을 맺었는데 간신히 생산기반을 닦아 놓은 10년째에 지주가 농지를 매각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필사적으로 항변해 봤지만 결국 한씨는 10년 공들인 나무와 땅을 뺏겨야 했다.

경기 김포의 조종대씨는 같은 2007년 지주의 직불금 부당수령 문제를 용기있게 고발했다. 국정감사에 출석하며 사회적 이슈를 이끌어냈지만 결국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도리어 본인은 농사짓던 땅을 뺏기고 지역에서 ‘찍힌’ 탓에 다른 농지를 구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됐다.

<한국농정>이 기획보도했던 대표적 농지문제 피해 사례들이다. 비단 농민들이 직접 겪는 피해만이 문제는 아니다. 지난 2월 대법원은 ‘비농업인이 상속받은 소유한도 내의 농지를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더라도 계속 소유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법과 현실이 공히 농지를 농민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121조의 ‘경자유전’ 원칙은 농지법을 낳았다. 그러나 농지법은 부모의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자식으로 성장했다. 예외적으로 허용해 놓은 임대차 규정에 근거해 농지의 소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한편, 농지가 농업 용도로 사용되도록 유도·관리하는 장치 마련엔 소홀했다.

1994년 농지법 제정 이후 25년이 흘렀다. 수 차례 개정을 거친 농지법은 농지의 생산수단적 지위보다 재산적 지위에 집중하게 됐고, 이 틈을 파고들어 갖가지 방법으로 비농민의 농지 투기와 불합리한 농지 임대차계약이 만연하게 됐다. 그 행태가 너무나 다양하고 광범위한 나머지 이제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개선이 아닌 개혁 수준의 접근이 필요하게 됐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 정부가 사회 각 분야에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업부문엔 아직 관심과 소양이 일천하지만 대통령 직속 농특위를 꾸리며 조금씩 의미있는 걸음을 내딛고 있다. 개혁은커녕 퇴보를 거듭하던 지난 정권들을 되돌아본다면, 농지개혁이라는 거대 담론을 꺼내들기엔 그나마 지금이 적기라 할 수 있다.

대통령 농정공약의 핵심이자 농특위 최우선 논의과제는 농업직불제 개편이다. 그런데 직불제는 농지문제와 가장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슈다. 농지개혁 없이 직불제만을 개혁한다면, ‘우리 아이 좋은 것 먹여 봤자 기생충이 다 빨아먹는다’는 구충제 광고문구처럼 농민을 위한 직불제로 지주들의 배만 불리게 될 뿐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직불제 개혁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라도 농지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직불제 부당수령 또한 농지문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농지는 농민에게 가야 한다. 예외적으로 임대차가 불가피한 경우엔 반드시 임차농을 보호해야 한다.’ 이는 헌법이 추구하고 모든 이가 공감하는 매우 기본적인 관념이다. 헌법제정 71년이 지나도록 퇴색된 채 방치돼 왔던 이 기본 관념을 이제는 마땅히 현실로 끄집어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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