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토론회] 농지는 농민에게 - 주제발표

경자유전·임차농 보호 … 농지문제, 이제는 칼을 들자

  • 입력 2019.04.21 18:00
  • 수정 2019.04.21 21:51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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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땅을 빌려 농사짓는 농민 패널들의 절절한 발표가 듣는 이들의 탄식과 실소를 자아냈다. 농민을 바라보지 않는 농지법의 실태에 모두가 문제의식을 함께했고 양도소득세·농업회사법인을 악용한 투기와 농지전용, 직불금 부당수령 등의 문제에 대해 개선을 촉구했다. 경자유전 원칙의 본질적인 확립 필요성에 의견이 모아지는가 하면, 농지 소유와 더불어 이용 측면에 관심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농지는 농민에게’ 토론회의 모습이다. 농번기가 시작된 데다 4.16 세월호 참사 5주기와 맞물려 현장 농민들이 많이 올라오진 못했지만, 각 농민단체 중앙·지역 대표들이 대거 참석해 농민들의 각별한 관심을 대변했다. 지정토론 이후 청중 토론에선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밀도있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농지는 농민에게.’ 실로 마땅하고 모두가 공감해 마지않는 말이지만 우리 농업계엔 오랫동안 묵은 숙제로 남겨져 있다. 미풍이나마 농정개혁의 바람이 일고 있는 최근의 분위기 속에서, 바야흐로 농지개혁을 실현할 방법과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한 이날의 토론회를 지상중계한다.

정리 권순창·한우준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농지법, 경자유전 원칙 담보해야”
사동천 홍익대 교수

최근 비자경 상속인이 상속받은 농지를 불법 전용한 경우에도 관할청이 농지 처분을 명할 수 없다고 본 대법원 판결에 대해 논란이 많다. 결과를 놓고 보면 잘못됐지만 법을 들여다 보면 사실 대법원 판결이 정당하다. 불법건축물에 대해 철거명령과 행정대집행을 할 순 있어도 토지까지 처분하라 할 순 없는 것과 같다. 물론 농지는 특수한 경우라 농지법에 별도 규정을 두면 농지 처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농지법에 그런 규정이 없다.

농지법에 경자유전의 원칙은 많이 무너져 있다. 농지법이 시행된 1996년 1월 1일 이전에 보유한 농지에 대해서는 소유자가 농업인이든 비농업인이든 경작의무도, 임대의무도, 소유상한 규정도 없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아무 것도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농업인이 이 농지를 상속받은 경우 똑같은 지위를 승계해 경자유전 원칙에서 예외가 된다.

비자경 상속인은 1ha의 소유상한이 있지만 농어촌공사 등에 임대·사용대하는 경우 그 기간동안 무한정 소유할 수 있으며 불법 용도변경을 해도 농지 처분을 명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는 이농자(8년 이상 경작한 후 이농)도 마찬가지다. 농지법에서 농업에 이용하지 않는 농지에 대한 처분 규정을 두고 있지만 사실상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적용받지 않는다. 적어도 일정기간 내에 처분을 명하는 규정을 둠으로써 비농업인의 농지소유 제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임대차에 있어선 소작이 금지돼 있는데 도대체 소작제가 뭐냐는 게 법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봉건적 소작제는 노동착취와 고율의 차임을 요소로 한다. 노동착취 부분은 이제 소멸됐다 하더라도 고율의 차임이 간접적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현재 공식적으로 확인된 차임이 38%까지 나오고 있고 실제 현장에선 50%까지도 나온다. 조선시대에도 심각하게 바라봤던 경작반수제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소작이냐, 임대차의 차임이냐 그 경계에 관한 규정이 없다. 차임 상한을 정하고 이를 넘어설 경우 계약무효에 처벌까지 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농지 전용에 따른 농지보전부담금도 적정하지 않다. 농지가 전용되면 시가가 2~3배 폭등한다. 농지보전부담금은 개별공시지가의 30%(㎡당 5만원 한도)인데 전용 후 가격과 비교하면 10%도 되지 않는다. 이 상태에선 누구나 농지전용을 기도한다. 특히 농업회사법인을 활용해 끊임없이 농지전용을 기도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농지부담금과 농지세 등의 현실화도 필요하다.

유일하게 경자유전을 포기한 대만의 농지가격은 우리의 10배에 달한다. 점점 생산을 포기하고 중국에 의존하게 된다. 대만 독립 이슈가 나올 때마다 중국이 농산물 수출을 중단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식량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다. 지금 우리가 겪는 농지 문제는 헌법이 위임한 농지법의 문제에서 비롯됐다. 하루빨리 농지법을 개정해야 한다.

 

“농지문제, 국가와 농민이 나서자”
강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농지문제에 대해 크게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하겠다. 첫째, 농지는 유지·보전돼야 한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016년 기준 23.8%로 OECD 최하위 수준이다. 수입개방과 농지전용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매년 1만ha 이상의 농지가 전용됐다. 전체 농지의 7%가 사라졌고 이 중 16.7%는 절대농지다.

농지 보전은 통일 대비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남북 8,000만 겨레가 소비할 쌀을 생산할 농지는 170만ha 이상이 돼야 한다. 현재 남의 논면적은 91만ha, 북의 논면적은 57만ha다. 통일인구를 제대로 먹이기 위해선 약 30만ha의 농지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농지보전부담금 감면을 확대하고 농지전용허가를 완화하며 농지보전에 역행하고 있다.

둘째, 경자유전의 원칙은 강화돼야 한다. 2017년 전체 농지의 51%가 소작지며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전체 농가의 60%가 임차농이고, 자기 땅이 한 평도 없는 농가가 8%다. 지주가 정당한 이유 없이 임대·휴경한 경우 처분명령을 받는데 이때 성실경작을 하면 3년 유예기간이 주어지고 유예기간 경과 후엔 처분의무가 소멸된다. 처분명령 미이행 시엔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지만 실거래가의 2~3%로 미미하다. 경자유전 실현을 위해 비농민 소유 농지는 처분 경과기간 이후 정부가 공시지가로 매입하고 현 경작농, 가족농, 청년귀농자 순으로 우선 장기 무상임대를 해줘야 한다.

셋째, 농지의 국가적 관리는 강화돼야 한다. 정부는 연간 1,600억원 규모의 농지 매입비축사업을 2조원대로 대폭 인상해 매년 4만ha 이상을 매입해야 한다. 농지은행 사업을 농어촌공사가 아닌 대통령 직속 기구를 통해 국가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 농지의 국가적 소유권 강화는 10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할 문제다.

넷째, 직불금 부당수령은 근절돼야 한다. 농촌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직불금 부당수령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가 건당 50만원의 신고포상금, 등록제한 5년·지급액 2배 환수 등의 부당수령자 제재 조치를 하고 있지만 특별할 게 없다. 신고포상금을 대폭 인상하고 등록제한은 1회 아웃, 부당지급액 50배 환수, 형사처벌 강화 등 상벌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부재지주 농지부터 시작해 농지이용실태를 전수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 땅에 누가 농사짓고 있고 어떤 작물이 심겨 있으며 직불금을 누가 받고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 이를 속속들이 관리하고 확인할 수 있는 건 현장 농민들밖에 없다. 마을별 농지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예산과 교육을 지원하고 권한을 줘야 한다.

마지막, 임차농은 보호돼야 한다. 농지 매매 시 임차인의 경작권을 인정하고 임차인이 우선 매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임차인들이 임대 갱신권을 요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임차료 상한제는 생산액 대비 일정비율로 할지, 공시지가 이자수익으로 할지에 대해선 논의가 선행돼야겠지만 어쨌든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헌법 121조 1항의 내용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논밭을 갖는다’는 경자유전은 조선의 기틀을 세운 정도전부터 후기 정약용에 이르기까지 조선이 이뤄내고자 하는 하나의 이상향이었다. 그리고 그 이상은 대한민국에서 현실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인정된다’는 예외조항으로 인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농지의 전용을 막고, 경자유전의 원칙을 강화하기 위한 농지법 개정이 서둘러 진행돼야 한다. 농지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경자의 대상으로 농민 여러분들에게 되돌아가야 한다. 농지로 인한 문제 때문에 농업을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자유전의 원칙을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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