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토론회] 농지는 농민에게 - 지정토론, 청중토론

경자유전·임차농 보호 … 농지문제, 이제는 칼을 들자

  • 입력 2019.04.20 22:31
  • 수정 2019.04.21 11:29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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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땅을 빌려 농사짓는 농민 패널들의 절절한 발표가 듣는 이들의 탄식과 실소를 자아냈다. 농민을 바라보지 않는 농지법의 실태에 모두가 문제의식을 함께했고 양도소득세·농업회사법인을 악용한 투기와 농지전용, 직불금 부당수령 등의 문제에 대해 개선을 촉구했다. 경자유전 원칙의 본질적인 확립 필요성에 의견이 모아지는가 하면, 농지 소유와 더불어 이용 측면에 관심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농지는 농민에게’ 토론회의 모습이다. 농번기가 시작된 데다 4.16 세월호 참사 5주기와 맞물려 현장 농민들이 많이 올라오진 못했지만, 각 농민단체 중앙·지역 대표들이 대거 참석해 농민들의 각별한 관심을 대변했다. 지정토론 이후 청중 토론에선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밀도있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농지는 농민에게.’ 실로 마땅하고 모두가 공감해 마지않는 말이지만 우리 농업계엔 오랫동안 묵은 숙제로 남겨져 있다. 미풍이나마 농정개혁의 바람이 일고 있는 최근의 분위기 속에서, 바야흐로 농지개혁을 실현할 방법과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한 이날의 토론회를 지상중계한다.

정리 권순창·한우준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소유자가 아닌 경작자를 보자” - 김대호(제주 서귀포시 농민)

서귀포시 예래동 농민 A씨는 자경 1,700평, 임차 1만1,500평 농사를 짓고 있다. 그 중 농업경영체 등록 농지는 7,400평, 밭직불금 신청 가능 농지는 4,600평이다. 성산읍 농민 B씨는 자경 4,200평, 임차 1만2,000평 중 농업경영체 등록 농지와 밭직불금 신청 가능 농지가 똑같이 5,000평이다. 안덕면 농민 C씨는 임차로만 1만3,300평을 짓는데 농업경영체 등록 농지가 3,700평, 밭직불금 신청 가능 농지는 0평이다.

2016년 제주도 조건불리·밭농업 직불금 지급현황을 보면 전체 농지의 52%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아마 신청조차 못했을 거라 본다. 지급상한 등 감경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직불금 미지급 농지 비율이 40%를 넘는다는 건 문제가 있다. 직불제를 아무리 좋게 만든다 해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증가하는 이유는 정부의 농지관리 부실에 있다. 농림사업 시행지침은 밭농업 직불제 신청서류로 ‘타인의 농지를 무단점유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요구하는 등 실경작하는 농민보다 농지 소유자의 권리를 우선 보장하고 있다.

강화되고 실질적인 경작사실 확인을 통한 임차농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 비료·농약 영수증이나 면적대비 출하량 등을 활용해 이 밭의 임자가 누구냐가 아닌, 누가 경작하고 있느냐를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기본서류로 해야 한다. 어찌됐든 농지를 기본으로 하는 직불제는 실경작자에게 지급하고 소유의 문제를 따지지 않았으면 한다.참고로 제주는 부동산 폭등에 대응해 2015~2017년 농지실태를 전수조사해 약 770ha의 농지에 처분의무를 부과했다. 제주 비거주자의 농지 매입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부동산 폭등세 진정에도 영향을 줬다고 본다. 다만 휴경·물품적치 등 눈으로 보이는 문제만 조사하고 불법임대차나 위장자경 등을 적발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양적 관리에서 질적 관리로 변해야” - 채광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지금까지의 농지는 농업진흥지역 지정을 중심으로 양적인 관리가 중요하게 이뤄졌다. 앞으로는 농지의 합리적 이용, 임차농 보호가 포함되는 질적 관리가 중요하다. 과거 경자유전의 원칙은 농지 소유자격을 농민으로 한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농지를 이용하는 방법이라는 당시의 보편적 가치를 따른 것이었지만, 현재에도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주제일까? 농지의 소유, 경영, 노동의 주체가 삼위일체로 하나였을 땐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현재 후계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가능한 일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현 시점에서 농지를 경작하는 농민에게 농지의 이용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부분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제도적으로 임차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독일이나 일본처럼 임대차 신고 제도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농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없다. 임차비율이 50%가 넘는다고 하지만, 이 비율 안에서 농민 간의 임대차, 부재지주의 임대차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부당수령은 농지제도 개선 및 비농업인 소유 제한으로 해소될 문제는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8년 자경 시 양도세 감면혜택을 부여하는 것이다. 불법 자경을 유도하는 가장 큰 이유인데, 도시민·농민 모두 구분 없이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경자유전의 원칙의 달성을 위해서는 농민에게 매도할 때만 세제혜택을 부여해야 한다.

 

“농식품부도 기본적 입장은 같다” - 문석호 농림축산식품부 농지과장

식량자급률과 통일 농업을 위해 국가관리를 강화하고 임차농을 보호해야한다는 부분에 대해 상당히 공감한다. 비록 모두가 접근하는 방식이 같을 순 없지만 이런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농지를 관리하고 있다. 농지과는 소유와 이용, 보전에 관해 각 담당자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조하면서 개선방향, 강화 방향을 찾으며 운영하고 있다.

현재의 농지법은 자경을 목적으로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인데 악용하는 분들이 있어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들은 이런 행위를 원천 차단하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고, 농지 이용에 대해서는 이용실태조사를 강화했더니 2016년도에 비하면 실태조사 적발건수가 굉장히 높아졌다. 이용실태조사를 현재 할 수 있는 내 강화할 것이고 부재지주에 대해서는 전수조사까지도 생각을 하고 있다.

농지 보전문제는 농지과가 굉장히 압박에 시달리는 부분이다. 우리 부를 제외하고 모든 부서에서 개발 압력이 밀려들어온다. 이런 부분에 있어 저희들도 최대한 막아내고 있지만 힘에 부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농지가 지켜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민단체의 한 목소리를 바랄 때도 있다.

앞으로 제대로 된 관리를 하려고 힘쓸 것이고, 여러분들이 말씀해주신 부분을 참고해 농지법 개정방향에 반영하도록 하겠다. 임대차 역시 임차농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

 

“농지는 단순한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 임영환 법무법인 연두

이번 대법원 판례에 대해 사동천 교수님께선 헌법불합치 부분을 떠나 일단 합리적 판례라고 하셨는데, 내가 봤을 땐 대법원이 농지의 소유 측면에만 집중하지 않았나 싶다. 농지법은 농지의 소유·이용·보전에 대한 것을 규정한 법이고 농지는 단순한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생산수단으로서의 역할이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데 대법원 판결은 이를 간과한 면이 있다.

농지법은 그동안 생산수단보다 부동산으로서 농지를 소유할 권리를 용이케 하는 쪽으로 개정이 이뤄져 왔다. 제정 당시엔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어려웠지만 2005년, 2009년 개정을 거치며 벽이 하나 둘 무너지고 비농업인도 자유롭게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악용해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소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농지 소유 예외규정 확대는 전반적인 사회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농촌 고령화와 인구감소 속에 농지의 비농업인 상속이 늘어나게 됐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단순히 농지를 처분하는 명령으로 그칠 것인지, 아니면 농지 이용에 관한 조화로운 지점을 찾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향후 농지법 개정은 부동산으로서의 농지가 아니라 생산수단으로서 농지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한 농지법의 농지 ‘이용’ 부분이 농지 ‘소유’ 부분의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데, 현재의 농지 이용 현실이 반영된 임대차 규정 개정이 필요하다.

한편 17일자로 규제특례법이 시행되면서 지역특화발전특구가 되면 기존 농지법 규제사항을 특례법으로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농지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농지를 임대·사용대할 수 있고 일시사용허가를 받아 활용할 수도 있다. 농지는 지자체의 관리 역량이 중요한데 특례법을 통해 농지에 대한 지자체의 역할이 많이 감소·쇠퇴될 우려가 있다.

 

“임차농, 부당수령으로 두 번 죽는다” - 전용중(경기 여주시 농민)

지주 9명을 통해 논 1만5,000평, 밭 5,000평의 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 2016년 쌀값 폭락으로 변동직불금이 고정직불금만큼 나오게 됐다. 그동안 지주가 직불금을 받고 그만큼 임차료를 덜 주는 방식으로 몇 년 째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 해, 지주는 자기 통장으로 들어온 고정직불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이미 임차료 관계는 끝났고 여주지역은 쌀값도 그렇게 떨어지지 않았으니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며칠의 실랑이 끝에 변동직불금을 받아냈지만 논은 다른 농민에게 넘어가버렸다.

임차농은 이미 을 중의 을이 된 상태다. 직불금을 지주에게 줄 테니 농사를 짓겠다는 농민들이 생기고, 토지를 매매하는데 참여한 부동산이 개입해 이를 부추기며 직불금은 당연히 지주가 받는 것이 돼 가고 있다. 농민들은 논을 얻기 위해 겨우내 부동산을 기웃대고, 을끼리의 경쟁에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부동산에서 교육 받은 지주들은 심지어 농약, 비료의 거래 및 수매대금 거래까지 자신의 명의로 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쌓인 경력을 갖고 지주들이 경영체도 등록하고 법적인 농민 지위를 획득하는 가운데 임차농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돼 간다.

농지의 농민적 소유를 늘려나가야 농업의 미래가 있다. 내 땅일 필요는 없다. 농민의 땅이면 된다. 소득이 보장되는 가운데 안심하고 농사짓고 싶다. 언제 떼일지 모를 땅을 사랑할 수 있는가? 농부는 땅을 사랑해야 하는데….

 

청중토론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현장의 체감으론 농지훼손이 훨씬 심각하다. 우리 지역만 해도 요즘 쌀값 지탱이 어려워 대체 작물 얘기가 나오면서 규제를 굉장히 많이 풀었고, 이에 투기 목적의 비농민 거래가 횡행하고 있다. 5년 전보다 세 배가 폭등한 지역도 있다. 어쩌다 한 번 도시 사람이 들어와서 시세를 올려버리면 일대의 가격이 전부 올라버린다. 전엔 농민이 정부 지원을 받아 농지를 소유할 여력이 조금이나마 있었지만, 지금의 시중 가격 속에선 더 이상 농민들이 농사를 지어 농지를 소유할 방법이 없다고 본다. 농지 실태 조사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 제대로 실시한다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꼴이 될 것이다. 통계 상 비농민 소유가 51%라고 하는데, 체감 상으론 80% 정도로 느껴진다.

 

한도숙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농업문명을 바라보는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시각 자체가 달라지지 않으면 신자본주의를 이길 수 있는 정책적 장치는 없다. 인류가 약 만년동안 농사를 지어오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땅이다. 땅을 가지고 우리의 역사가 변천돼 왔으며, 땅은 우리의 철학이고 문명이다. 이것을 다 팽개친다면 다른 나라에게 다시 식량으로 복속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 철학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장치를 갖다놔도 소용이 없다.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의장

3년 전에 부동산을 통해서 논을 계약했다. 땅 주인은 누군지도 모른다. 2년 후 그 논 위에 아파트 짓는다고 토지보상 절차가 진행됐다. 토지보상법에 의하면 이 경우 (땅값과 별개로) 농사를 계속 짓지 못하는 데 대한 영농손실 보상이 있다. 그런데 현재 토지보상법은 지주가 실경작자가 아닌데도 인근에 거주하고 농지원부만 있으면 영농보상의 50%를 가져가도록 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토지 소유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로 전락해 우리의 권리를 50%나 넘겨줬다. 농사를 못 짓는 것도 억울한데 농민들이 토지주를 찾아다니고, 사정하고, 그럼에도 배짱부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도록 한 법을 왜 그냥 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농지 소유 관련해 각종 규제가 대기업과 자본의 힘에 의해 완화되고 있다는 인식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문제는 농민들이 힘이 없다. 농민이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전체 인구의 8%밖에 안되는 우리가 단결한다고 해서 어떻게 법을 바꿀 수 있나? 농업과 관련된 연구를 맡고 있는, 특히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같은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이 나서서 농민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 이번에 출범하는 대통령 직속 농특위에서 팀을 짜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좌장)

농지문제는 농업 문제의 핵심이다. 그동안 투기대상으로 전락해 농지가격이 계속 올랐고, 그로 인해 용역비가 오르고, 생산비가 올라 결국 농산물 가격도 계속 올랐다. 농산물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상위 1%가 토지의 57%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농지는 농민에게’라는 이번 토론회의 커다란 주제를 농민으로서 버겁다 느낀다.

토지 이용 및 소유 실태, 조사를 제대로 한번 했으면 좋겠다. 이 자리에서도 나왔지만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별로 확실히 교차 검증하면 농지 이용실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서류만 가지고선 농사를 짓는다고 하는 사람이 농민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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