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72] 아, 아로니아

  • 입력 2019.04.21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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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국회에서 열린 아로니아 관련 토론회에 좌장으로 참여했다. 많은 토론회 좌장을 맡아봤지만 이번 토론회만큼 힘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로니아 재배 농가들이 몹시 격앙돼 있었기 때문이다. 농가들은 지금까지 29번의 집회도 하고 당국에 건의도 했으나 정부의 태도변화가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사실 아로니아는 소득작목으로 각광받았고 가격도 좋았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아로니아 생과뿐만 아니라 가공제품 가격이 3만원에서 1,000원으로 폭락하는 등 아로니아 재배 농가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뭔가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이 고작 평당 2,000원의 폐원지원금이라니 농가들이 화가 날만하다.

그래서 농가들은 FTA 피해보전 대상품목으로라도 인정받기를 원하는데 정부의 논리와 농가의 논리가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부는 생과가격 폭락은 생과수입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FTA 피해보전직불금을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이고, 농민들은 주로 가공품이 소비되는 아로니아의 특성상 가격폭락은 가공품의 수입 때문이므로 직불금 지급대상이라는 주장이다.

나는 이런 양측의 주장을 접하면서 생과든 가공품이든 결국은 농산물수입 자유화에 의한 농가의 피해가 분명한 것이니 정부는 알량한 경제논리가 아니라 피해 그 자체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법적논리를 찾는 노력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부정적 논리개발에만 열중하는 정책당국자들의 편협한 사고가 이번 사태를 여기까지 이르게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0여년 전부터 한-미 FTA, 한-EU FTA 등 수많은 FTA를 체결할 때마다 정부는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고,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농업분야에 대해서는 피해대책을 충분히 강구하겠다고 수없이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는 과연 그 피해대책을 충분히 세워왔는가. 예산을 한 푼이라도 깎는데 혈안이 돼있었을 뿐이다. 재경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농식품부 마저도 과연 얼마나 피해대책과 지원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알량한 경제, 법적 논리를 앞세워 요리조리 피해가는 데는 타고난 소질을 보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대책이나 지원은 천재적 능력을 보이며 빠져나가고 있지 않는가. 이러는 사이 우리의 농민·농업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고 농촌은 소멸해 가는 것이 내 눈에는 훤히 보이는데 왜 정책당국은 보지 못하는 걸까. 아니 안보는 걸까.

생과냐 가공품이냐가 피해 판단의 근거가 되는지 아닌지가 그렇게도 중요한 요소일까. 값 싼 가공제품의 수입으로 가격이 폭락했다는 경제적 법적 논리 하나 찾아내지 못하는 정부와 연구기관이라면 직무태만이거나 무능력의 극치가 아닐까.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앞으로 이런 사태가 아로니아 농가의 일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한-미 FTA 추진을 앞장서서 반대했던 농경제학자로서 나는 그 폐해를 이미 10여년 전부터 예언했고 그 예언은 하나하나 맞아 돌아가고 있다. 아로니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농민들은 뭘 심어야 할지가 점점 더 막막하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농민·농촌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회 토론회를 마치고 양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았지만 흥분한 아로니아 농민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우울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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