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노조 발언 유감

  • 입력 2019.04.22 07:30
  • 수정 2019.05.03 16:02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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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우선 이 인사말을 잘 곱씹어 읽길 바랍니다. “시위를 하는 것도 법이 허용하는 단체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처럼 공식적으로 법이 허락하는 단체가 있는가하면 지금 밖에서 하고 있는 저 화물연대는 불법단체다. 농민들이 농산물 만들면 화물차를 갖고 서울로 이동하고 각 대도시로 이동하는 화물차를 쓰고 있다. 저분들이 무슨 단체를 만들어서 그 단체를 인정하라는 얘기다. 제가 그랬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단체다. 그래서 불법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농협물류에 진입을 허용하지 말라.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은 일체 계약을 못하도록 조치를 하고 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속 깊은 곳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지난 16일 농협 대의원조합장 300여 명이 모이는 ‘2019년도 제2차 임시대의원회’ 자리에서 농협중앙회 회장이 인사말 첫 머리에 꺼낸 말이 노동할 권리를 외치는 노동자들과 상급단체를 향해 ‘불법시위·불법단체’를 운운하고 ‘일체 계약하지 말라고 조치했다’라니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듣는 사람에 따라서 ‘노조 활동은 절대 안 돼’라고 여길 가능성도 농후했다.

앞서 ‘화물연대’는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본관 앞에서 ‘노조한다고 계약해지, 국민에겐 위험한 먹거리 공급 농협물류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엔 농협물류에서 화물노동자로 일하다가 관리자들의 부당 처우에 항의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농협물류안성분회)을 만들었던 노동자 수십여 명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이들은 재계약 만료 시점을 앞두고 농협물류측이 화물연대 탈퇴, 단체행동 금지 등을 요구하는 확약서를 요구했고 이에 불응하자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직장인 안성농협물류센터를 폐쇄했다며 김병원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김병원 회장으로선 “평소 존경하는 대의원조합장 여러분”들이 임시대의원회장으로 “들어오는데 소란스러워서” 불편을 끼쳤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양해해줄 걸로 믿으며” 끝낼 일이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단체”라며 지난달 말까지 농협물류에서 일하던 이들을 서슴없이 비난할 일인가. 노조활동을 했다고 한순간에 직장을 잃은 그들의 심경을 헤아릴 순 없었나.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를 비난하기 전, 무엇보다 이들이 제기했던 배차를 구실로 한 관리자들의 금품 및 성접대 요구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돼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팩트체크’로 길었던 말을 줄인다. 회장님, ‘화물연대’는 바로 당신이 ‘법이 허락하는 단체’라고 말한 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를 상급단체로 하는 노동조합(2002년 결성)임을 이 자리를 빌려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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