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농민 아자아자아자!

  • 입력 2019.04.14 20:01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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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전남 구례)

농민운동에 꿈을 품고 농부의 딸이면서도 농사도 모르는 제가, 먼저 내려와 농사지으며 농민운동하는 남편이 있는 이곳 구례에 온 날! 1991년 5월 30일을 기억합니다. 몰랐으니 용감했겠지요. 지금은 어엿하게 큰 딸 셋을 둔 엄마가 되었답니다.

30여년이 다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농사짓는 데는 서투름 투성입니다. 다들 씨앗을 심은 후에야 그것을 깨닫곤 늦게 심기 일쑤입니다. 감나무 이파리가 엄지손톱만 해질 땐 호박씨를 넣어야 한다는 옆집 할머니의 말씀에 ‘아~ 이것이구나’ 했습니다.

농사는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해야 한다는 아주 오묘한 진리를 말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할머니들을 만나면 맨날 물어봅니다. 이 씨앗은 언제 뿌려야 하나요? 바람이 이렇게 불면 비가 올까요? 농사에 척척박사이신 나이 드신 여성농민들께 맨날 배움입니다.

어릴 적 보릿고개를 경험한 마지막 세대인 덕에 친환경적인 농사보다는 다수확 농사에 돈 되는 농사에 호감이 더 갔습니다. 친환경농사는 부자들을 위한 농사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유기농이 값비싸다는 그런 생각이었지요. 땅덩어리 작은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도 맘 놓고 먹기 위해서 다수확에 가격 또한 누구나 손쉽게 집어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 언니네텃밭을 시작하면서 나도 이제 먹을거리 농사 생태적인 농사를 지어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지리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남편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 한 평 없이 돈 한 푼 없이 시작한 농사의 시작은 300평 작은 안개꽃하우스였습니다. 농민운동하기 위해 내려온지라 농사에 전념할 수는 없다는 신념에 그중 가장 만만하게 보이는 게 안개꽃이었나 봅니다.

그 후 10여년이 넘게 꽃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는 그것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남편과 며칠을 상의한 후 지속가능한 세상 생태적인 방법의 먹을거리 농사를 짓기로 했습니다.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에 밖에 나갈 일이 많은 우리 부부는 밤늦도록 하우스에서 헤드랜턴을 켜고 일하기 일쑤입니다. 농사짓는다고 농민운동의 꿈을 덜 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몸은 고단해도 먹을거리 농사 생태적인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즐거움의 연속입니다.

벌레 먹어도 조금 못생겼어도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이 아니랍니다. 땅과 온갖 풀벌레가 함께하는 속에서 나물들이 농부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땀방울을 먹고 자란답니다. 비료 한줌 뿌리면 하루아침에 쑤욱 클 텐데, 제초제 한통이면 되는 걸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풀을 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손톱이 닳아지고 남은 손톱 끝은 흙으로 물들어 버린 여성농민의 손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 내 세대에서 단 하나도 훼손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농사짓습니다.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것은 아마 이 세상 최고의 행복이지 않을까요? 어때요? 농사 한 번 지어보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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