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스스로 만든 불법체류자, 누굴 탓하랴

  • 입력 2019.04.14 16:59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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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전북 장수군의 한 토마토 스마트팜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한승호 기자
전북 장수군의 한 토마토 스마트팜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한승호 기자

 

‘지방소멸’의 시대다. 도시보다 일찍 인구절벽(16~64세의 생산가능연령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시점)을 맞이한 농촌은 자국민의 농업노동 기피까지 겹쳐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린 지 오래다.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선진국들처럼, 우리 농업도 인력 수입으로 위기를 겨우 넘기고 있다.

그들의 존재감은 강렬하다. 이젠 ‘외국인이 없으면 밭농사는 망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농촌 외국인노동자들의 이 같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은 법적으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불법체류자 신세다. 20년 가까이, 우리 사회는 농촌을 지탱하는 큰 기둥 하나를 사회적 투명인간들에게 맡기는 모순을 방치하고 있다. 

 

상.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가 돌리는 농촌의 시계

하. 우리 사회 스스로 만든 불법체류자, 누굴 탓하랴

 

그렇다면 농촌엔 어쩌다 이렇게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가 늘게 됐을까. 농촌노동자 태부족으로 외국인이 자국민을 대체하고 있는 현장의 실태는 지난 기사에서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그래서 대체 왜, 그 외국인들은 국민 정서에 반하는 불법체류자가 대부분일까.

통계만 놓고 보면 농촌노동을 위한 허가를 받고 입국하는 외국인의 수 자체가 매우 적은 것이 원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농민들은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력의 공급 형태가 농촌의 현실에 맞지 않으며, 이대로는 수를 늘린다 해도 현재와 같은 모순을 해결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비전문직종 취업을 목적으로 입국하는 외국인은 대부분 ‘고용허가제’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게 돼 있다. 비자 분류로는 E-9에 해당한다. 고용노동부는 산업별로 쿼터를 배정해 외국인근로자 고용을 희망하는 사업주들의 수요를 파악한 뒤 노동력 수출을 원하는 국가에 입국을 요청하게 된다.

농업분야엔 해마다 6,000명 수준이 할당되는데 이를 통해 고용상태로 일하고 있는 농촌 외국인노동자는 2016년 기준 2만7,984명에 불과하다. 비교 예시로 올해 농번기 관내 농가만을 위해 총 1만7,000명의 인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경북 영덕군의 사례를 생각하면, 전국 농촌의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숫자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현재 현장에서 노동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농사는 대개 밭작물인데, 한시적으로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지만 1년 내내 노동력을 투입할 필요는 없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을 고용할 경우 일반적으로 3년의 고용을 보장해야 하는데, 한철의 농사일을 위해 농한기에도 월급을 지급하는 것은 소득불안정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중소농들에겐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알고 있겠지만 외국인 없으면 농사 못 짓잖아. 내가 논, 밭, 하우스를 다 합쳐서 한 5만평 되는데 예전에 두 명을 월급을 주면서 썼었어. 근데 두 명도 봉급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어. 농한기에는 필요가 없을 때가 많지만 계속 급여를 줘야하니까. 그렇다고 두 명을 겨우 써도, 열 명이 하루에 끝내 버려야 하는 일은 할 수가 없어.”

취재 중 만났던 한 마을 이장은, 합법 체류를 하고 있는 외국인을 고용했다가 그 인건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포기했다고 한다. 불법을 저지르고 싶어서가 아니라, ‘시기’가 중요한 농사 특성 상 일손을 줄이고 일의 기간을 늘려서 작업할 수 없어 결국 일당제 일손을 구할 수밖에 없고, 자국민은 없으니 결국 외국인을 일당제로 쓸 수밖에 없다는 것. 이 이장은 그 대신 이들의 가치를 존중해 알선업자들을 통하지 않고 외국인을 직접 수소문해 데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일이 필요할 때마다 이들을 불러 시간당 임금을 지급하고, 마을 빈집을 유용해 무상에 가깝게 거처도 제공한다고 한다. 이장과 함께 있던 농민은 이렇게 거든다.

“이런 식으로 하면 장점이 뭐냐면, 우리 동네의 한 사람으로 봐요. 술도 같이 먹고, 밥도 같이 먹고. 외국 나와서 일하고 있는 거 짠하니까 쌀도 갖다 주고. 근데 이걸 영업을 하게 되면 필요할 때 안주거나, 가격을 올려버리거나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문제가 많이 생기지.”

외국인에 대한 농촌의 인식이 바뀌어가는 것과 맞물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들은 아예 자발적으로 미등록 노동자, 즉 불법체류자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고용허가제가 본래의 취지를 잃고 사실상 외국인들을 불법체류로 내몰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사정이 생겨서 본국에 다녀오려고 휴가를 요청한 친구가 있었어요. 농장주는 알겠다고 했죠. 그런데 다녀오니까 해고가 돼 있었던 거죠. 그럼 어떻게 할까요? 억울하니까 미등록 노동자가 돼서라도 돈을 벌려고 하겠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외국인노동자 쉼터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이찬 대표는 고용허가제가 외국인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로 내몰고 있다고 설명했다. 흔히 보도되는 것처럼 사업자에 의한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 초과노동이 자주 일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항할 외국인노동자의 권리는 상당부분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용허가제로 외국인을 고용하는 농업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하는 게 뭐가 있습니까. 본인들이 알선하면서도 외국인노동자들의 노동시간에 대해 아무도 모릅니다. 실제로 몇 시간을 일하는지도 몰라요. 여기 쉼터에 있던 노동자들이 많이 간 경기도의 대규모 시설농장이 있는데, 근로계약서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한다고 적혀 있지만 실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습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농촌노동 외국인은 주로 상시 관리 인력이 필요한 축산 시설이나, 연중 가동이 가능한 첨단 시설하우스 등 1년 내내 월급을 지급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그럴 이유가 충분한 대규모 농장들로 배치된다. 10년간 쉼터를 운영한 김 대표는 이런 시설들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를 수없이 목격했다고 말한다. 그는 농촌의 요구에 따라 생긴 계절노동자 제도의 확대가 어느 정도 해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노동자의 인권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답이 없는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농촌노동의 가치에 대한 모두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안돼요. 농촌에서 일하는 이들이 단결권 등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고, 그로 인해 상승한 농산물 가격을 국민들도 납득할 수 있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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