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여성농민 전담부서에 거는 기대

  • 입력 2019.04.14 18:00
  • 기자명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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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이자 인간으로서 존엄성의 보장이다.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이다. 요즘 아이돌들의 성폭력사건, 미투운동을 보면서 인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매일 똑같이 들에 나가 힘들게 일하고 들어와 남편은 발 뻗고 쉬며 밥을 재촉하고, 아내는 씻지도 못한 채 부엌에 들어가 종종거리며 밥을 하는 풍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농촌문화를 보며 인권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평생을 손이 갈퀴가 되도록 일군 전답을, 일도 안했던 자식들은 당연한 듯 상속받으면서 정작 그 어머니는 자신의 명의로 된 땅 한 평 가져본 적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인권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20년을 농촌에 들어와 전답을 일구고, 아이 키우고, 시부모 모시고, 마을 부녀회 일까지 도맡아 하면서도 그 여성농민의 지위는 농가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여성농민의 직업적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여성농민들의 투쟁 끝에 공동경영주 등록제도가 시행됐다. 하지만 공동경영주로 등록한 여성농민 수는 고작 몇 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제도가 시행됐어도 모든 농업정책에서 여전히 여성농민들에 대한 지위나 권한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있었던 농협조합장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여성농민들이 본인 명의로 된 농산물 거래실적이 없다고 해서, 본인 명의의 땅이 없다고 해서 농민임을 부정당하고 농협조합원에서도 정리돼 버렸다. 농가대표가 주로 남편으로 돼있고, 남편 명의로 대부분의 농산물 거래나 정책자금이 지원되기 때문이다.

성폭행사건을 일으킨 조합장이 버젓이 무죄판결 받고 또다시 선거에 나와도, 일부 조합의 임원들이 조합 돈으로 해외연수를 가서 집단 성매매를 해도 사사로운 해프닝으로 끝나는 농촌의 문화 속에서 여성농민들의 인권의 현주소를 본다.

농기계 사용에 전혀 관계없는 벌거벗은 여성을 앞세운 광고가 버젓이 신문에 기재되고 있는 농촌에서, 2019년 치러진 조합장선거에 당선된 여성조합장수가 고작 0.7%에 지나지 않는 농촌 환경에서 청년여성들이 과연 들어오려고 할까.

농촌의 고령화가 심해 30년 안에 수많은 군 단위가 없어질 거라는 연구보고서가 나오자 후계인력을 육성하고 귀농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뭔가 앞뒤가 뒤바뀐 느낌이다. 농촌에 살고 있는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폭락으로 농업소득이 줄어 빚더미에 시달리고, 농촌에 거주하고 있는 여성농민들은 직업적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현실은 외면한 채 고작 몇 푼 지원해주는 정책으로 후계농이 들어올 것인가.

사람이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도 여성농민들의 사회적 지위나 권리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 안에 여성농민 전담부서가 올해 안에 만들어진다는 희소식이 들려온다. 전라남도와 충남 부여에서 전담인력이 세워지고, 나주시에는 전담부서가 설치되고 있다. 여성농민 전담부서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크다. 법과 제도의 영역까지 개선해가려면 할 일이 너무 많다. 상당한 인력이 충원되고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면 단위 영농교육에서 성평등 교육이 이뤄지고, 정책자금 배정에 성평등 교육 이수점수가 반영되고, 모든 농민들에게 공익적 보상에 대한 농민수당이 지급되고, 공동경영주로 되면 조합원 가입도 자유롭게 되는 농촌, 농협 이·감사 대의원에 여성이 더 많이 진출하고, 여성친화형 농기계가 많이 만들어져 혼자 힘으로 농사일도 거뜬히 하고, 상담 및 농부병 치료센터도 들어서는 등 여성농민이 살기 좋은 농촌, 여성농민이 행복한 농촌이 된다면 나도 내 딸에게 영농을 물려주고 싶다.

30년간 전여농이 주장해왔던 여성농민전담부서 설치가 이제야 가시화되고 있다. 여성농민이 배제되지 않는 농민 수당을 얘기하면 정책실현에 발목을 잡는다며 불편해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여성농민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리가 보장될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음을 역지사지 입장에서 바라봐 주면 좋겠다.

마음이 있으면 방법을 찾는다 했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현재 직불제, 농지법 개정 논의에서도 나왔듯이 마을단위 농지관리위원회의 역할을 키우고 그에 따른 책임도 강화하면 된다. 단계적 시행이 되더라도 함께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성농민이 행복한 농촌은 이 땅의 모든 농민이 행복한 농촌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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