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다양성을 허하라

  • 입력 2019.04.14 18:00
  • 수정 2019.04.18 15:26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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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남구에 위치한 송학농장에서 복원해 키우고 있는 재래돼지가 지난 9일 방목장을 뛰놀고 있다. 토종가축 인정을 준비 중인 송학농장엔 현재 종돈 10두를 포함해 200여두의 재래돼지가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한승호 기자
경북 포항시 남구에 위치한 송학농장에서 복원해 키우고 있는 재래돼지가 지난 9일 방목장을 뛰놀고 있다. 토종가축 인정을 준비 중인 송학농장엔 현재 종돈 10두를 포함해 200여두의 재래돼지가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우리나라 돼지고기 시장은 삼원교잡종(LYD)이 절대다수를 점유하고 있다. LYD는 랜드레이스, 요크셔, 듀록의 장점이 집약된 백색돼지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도 보편적인 품종이다. LYD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생산성이다. 새끼를 많이 낳고 살이 빨리 찌고 도축시 정육률도 높다. 그러면서도 일정한 고기의 품질을 유지해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한돈분야도 LYD와 함께 고속 성장할 수 있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돼지 등급판정두수는 1,735만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생산액은 쌀보다 많은 7조3,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하지만 성장의 과실은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사육규모 3,000두 이상인 비육돈 농가는 1두당 순수익이 10만7,012원이었는데 1,000두 미만인 농가는 1두당 순수익이 4,262원에 불과했다. 같은해 돼지 사육규모가 1,000두 미만인 농가수는 전체 4,406가구 중 1,585가구에 달한다. 이들 농가는 작은 위기에도 도태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소비자들 역시 획일화된 돼지고기 시장에 만족하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해 업계를 강타한 ‘이베리코 쇼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베리코의 인기는 직전 수입 냉동삼겹살을 내세운 무한리필 유행과는 결이 다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돈이 수입 돼지고기에 비해 경쟁력을 가졌던 ‘맛’에서 우위를 뺏길 여지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베리코는 수입물량이 적어 시장점유율은 낮았지만 시중 돼지고기와는 다른 맛, 그리고 스토리텔링이 강조된 마케팅 전략이 융합되며 만만찮은 파장을 던졌다.

세계시장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중국을 덮치며 요동치고 있다. 시장상황은 하락이 점쳐지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가격이 뛰는 시장으로 변할 정도로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대량생산-대량유통의 단순도식을 대입해서 풀기엔 어려운 방정식이다.

대안은 시장의 다양성에서 찾아야 한다. LYD 시장이 주를 이루되 그 이외의 품종도 작은 시장을 형성해 공존해야 앞으로 닥칠 다양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 사라졌다가 다시 복원되고 있는 재래돼지가 귀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재래돼지는 지역별로 다른 돼지였다. 그래서 지례돈, 강화돈, 사천돈, 정읍돈, 제주돈 등 지명으로 불리웠다. 실제 포항시 송학농장에서 어렵사리 복원한 재래돼지는 제주 재래돼지와도 유전적 차별성이 있는 걸로 알려진다. 그러나 일제시대 개량종이 보급되며 재래돼지는 사라져갔다.

품종별로, 그리고 지역별로 다른 돼지가 되살아난다면 한돈은 LYD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비로소 온전한 위상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소농은 양돈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통로를 찾고 소비자는 다양한 맛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다양한 돼지가 살아가는 한돈의 내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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