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헌의 통일농업] 북한의 농업이 크게 변하고 있다

  • 입력 2019.04.14 18:00
  • 기자명 이태헌((사)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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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헌((사)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이태헌((사)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북한은 지난해 이례적으로 농업부문의 성과가 미흡했음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지난해 12월 25~26일 양일간 평양에서 열린 제4차 전국농업부문열성자회의에서 박봉주 내각총리는 농업생산에서 혁신이 미흡했음을 언급하면서 종자관리와 적지적작, 그리고 포전담당책임제 운용 등에 대해 여러 결함을 지적했다.

북한은 또 지난 8일자 ‘로동신문’을 통해 “과학농사와 ‘분조관리제’를 틀어쥐면 풍년을 안아 올 수 있다”며 모범적인 협동농장의 사례를 들어 과학농사와 분조관리제를 통한 다수확방안을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일과 9일에는 박봉주 내각총리와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각각 황해도 협동농장과 축산농장, 농기계기업소 등을 찾아 농업생산단위들을 대상으로 ‘현지료해’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는 최고위급 간부들이 현지의 사정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우리에겐 무척이나 낯선 보도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북한의 로동신문이 전하는 최근의 기사에서는 주목할 만한 ‘김정은시대의 농업’이 읽힌다. 특히 과학농사와 분조관리제를 강조하는 것에 대해 북한농업전문가들은 “북한의 농업이 구조적으로 바뀌는 조짐”으로 해석한다.

확연히 북의 보도내용에는 이전과는 달리 ‘주체농법’이란 표현보다는 ‘과학농사’라는 말이 더 강조되고 있다. 이는 북의 신년사에서도 유사한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이전에는 ‘종자혁명’, ‘두벌농사방침’, ‘감자농사혁명’, ‘콩농사방침’ 등 ‘4대 농업방침’이 강조됐으나 김정은 위원장 취임 이후에는 과수·버섯·축산·양어 등을 언급하는 것으로 크게 바뀌어 왔다.

사실 북한의 이 같은 변화는 그동안의 여러 정책에도 반영돼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은 지난 2002년 ‘7.1 경제개선조치’를 취한 데 이어 2012년에는 ‘6.28 방침’과 2014년 ‘5.30 노작’을 시행해 왔다. 여기에는 협동농장의 경영자율성을 확대하는 동시에 수익성 중심의 평가와 책임을 점차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에는 정부의 수매가를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방식을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개인 소유의 몫으로 분배받은 것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변화도 시작됐다. 협동농장에서는 자율성이 높아지고, 작업분조의 규모는 포전담당책임제가 도입되면서 이전보다 더 축소됐다. 지역에 따라서는 책임경영 농지를 노동력 1인 기준 0.3ha씩 배분함으로써 해당농지의 50~60% 수준까지 확대하는 시범사업을 펴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시대의 농업’은 향후 어디로 향할까? 어떤 속도로 변할까? 북한의 경제통으로 알려진 박봉주 내각총리의 언급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겠다. 그는 정치적 실각 이후 복권되어 현재 북한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

그는 지난해 연말 농업부문에서 성과가 미흡했음을 언급할 당시 종자관리 방식에 관한 문제점과 함께 기후조건과 포장별 특성에 맞게 작물배치를 하지 않은 점, 그리고 분조관리조 안에서 포전담당책임제의 장점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점을 크게 지적했다. 아울러 다수확을 위한 지력관리와 생산혁신을 위한 경제조직사업을 강조했다. 큰 틀에서는 과학농사와 포전담당책임제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학농사는 이제 북한에서 ‘주체농법’을 대신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농업은 새로운 기술과 생산방식에 대해 이전과는 달리 유연한 입장을 취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북한의 주체농법은 당시 북한의 기술적·정치적 역량이 총 결집된 농업관리 지침서였다. 여기엔 방대한 분야의 농업기술과 농업여건이 집대성돼 있다. 이는 북한의 농업이 전후에 비약적으로 성장을 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 그렇지만 농산물거래의 세계화 및 첨단기술의 융복합, 그리고 농기계·농약·종자·온실 등 농관련 산업의 비약적 발전에 대해 이를 제때 수용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낳기도 했다.

북한이 또 ‘포전담당책임제’를 도입, 확대하고자 하는 것은 성과중심의 평가와 분배 방식을 본격 적용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은 이전에도 단순 ‘노력일수’보다는 ‘번 수익에 의한 평가’를 반영하는 조치를 취하긴 했으나 최근 잇따라 이 같은 정책을 분명하게 거듭 강조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포전담당책임제는 사실상 2~3 가구를 기준으로 경지관리와 생산을 전담토록하고 여기서 취득하는 부가수익을 자율처분토록 하는 정책이다. 경작농민에게는 경작지관리 및 증산에 필요한 동기를 유발하고, 차등적인 분배는 장마당을 통해 유통되도록 유도하는 셈이다. 이제 포전담당책임자는 분조관리제를 통해 생산기반부터 영농물자 수급, 작목선택, 그리고 생산과 판매 등 전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셈이다.

북한은 이처럼 확실히 과학농사와 포전담당책임제로 대표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별 작목선택과 신기술적용, 생산과 유통 등 농업의 전분야에서 그들은 새로운 혁신을 찾으려 하고 있다. 로동신문의 보도는 과학농사와 포전담당제라는 새로운 정책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더 이상 주저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북한은 지난 2016년 7차 당대회를 열어 ‘사업총화결정서’를 채택하면서 2020년까지의 3대과제의 하나로 꼽힌 농업부문에서는 농업 기계화율 제고, 우량 품종과 종축 확대, 유기농업 육성 등을 핵심정책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제 북한은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지역의 생산단위 중심으로 위임하면서 제도개선과 기술도입을 통해 이를 촉진토록 하고 있으며, 북한 당국은 농업구조 개선과 생산기반 정비 사업을 본격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런 정책의 성패와 진척 속도는 각종 대북제제 문제와 맞물려 있다. 향후 남북 간 농업협력도 이 변화된 방향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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