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나는 갱년기 시골 아줌마

  • 입력 2019.04.07 20:15
  • 기자명 송인숙(강원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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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숙(강원 강릉)
송인숙(강원 강릉)

27년째 농사를 하고 있다. 해마다 배우면서 농사를 해도 항상 다음해에 새로운 방법을 농사에 적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롭게 변하는 농업은 한 해 한 해 배워가지 않으면 발전을 할 수가 없다. 이제는 일할 사람도 없고 농사를 더 짓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안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27년 동안 일에 지쳐 있을 때 소리 없이 나에게 갱년기가 찾아왔다. 하루에도 더웠다 추웠다를 수도 없이 반복을 했다. 밤에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침대 옆에 한쪽에는 선풍기를 한쪽에는 솜이불 두 개를 놓았다. 밤새 양쪽을 오가다 보면 밤을 지새우기 일쑤다. 아침이면 온몸이 쑤신다. 그 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처음 겪어보는 갱년기는 힘들고 짜증나는 시골 생활을 더 힘들게 했다.

나는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웃집 할머니를 동네 보건소에서 뵈었다. 내가 처음 귀농을 했을 때 나를 많이 도와주셨던 분이다. 인사를 드리니 나를 못 알아보시고 어디서 왔냐고 하신다. 송천에 살아요 하니 전에 송천에 새댁이 있는데 그 집에 가서 일을 해주었다고 하신다. 나를 기억을 못하시고 우리집에서 있었던 일만 기억을 하신다. 혼자서 살고 계신다. 치매였다.

얼마 더 지나 우리 동네의 모퉁이에 우리집 일을 도와주셨던 다른 할머님이 앉아 계신다. 할머니 혼자 사시는데 저녁만 되면 나와서 누군가를 기다리시는 거다. 주위의 권유로 지금은 요양원에 가셨지만 그런 노인들을 볼 때마다 앞으로의 내 모습이 보이곤 한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서 살았고, 나이 들어 이제는 돌봄이 필요하지만 혼자이다. 나도 초고령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

문득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하고 갱년기 극복계획을 세웠다. 하루 한 번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한다. 그리고 되도록 힘이 들 때 마시는 커피를 줄이고. 새롭게 도전할 것을 찾았다.

27년간 나를 지탱해준 버팀목은 공부였다. 저녁에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는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다시 도전하고…. 공부는 나의 여가활용이라는 생각이다. 어차피 이 나이에 공부를 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할 것도 아니고 그저 내 마음의 위로와 자존감을 높이는 데 공부만한 것이 없다.

더욱이 조용한 시골만큼 공부하기에 적당한 곳은 없다. 내가 도시에서 살았다면 이렇게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두 아이가 커서 학업을 위해 집을 떠났고 남편과 둘이 사는 집에서 나는 나 자신을 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 기반을 바탕으로 난 멋진 갱년기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보낼 수 있다면 나의 노년은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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