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 외국인이 돌리는 농촌의 시계

  • 입력 2019.04.06 14:18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농촌이 고령화되며 인력난에 빠지자 외국인노동자가 일손의 상당 부분을 메우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달 27일 강원도 춘천의 한 들녘에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감자를 심고 있다.
농촌이 고령화되며 인력난에 빠지자 외국인노동자가 일손의 상당 부분을 메우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달 27일 강원도 춘천의 한 들녘에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감자를 심고 있다.

 

‘지방소멸’의 시대다. 도시보다 일찍 인구절벽(16~64세의 생산가능연령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시점)을 맞이한 농촌은 자국민의 농업노동 기피까지 겹쳐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린 지 오래다.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선진국들처럼, 우리 농업도 인력 수입으로 위기를 겨우 넘기고 있다.

그들의 존재감은 강렬하다. 이젠 ‘외국인이 없으면 밭농사는 망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농촌 외국인노동자들의 이 같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은 법적으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불법체류자 신세다. 20년 가까이, 우리 사회는 농촌을 지탱하는 큰 기둥 하나를 사회적 투명인간들에게 맡기는 모순을 방치하고 있다.


상.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가 돌리는 농촌의 시계

하. 우리의 수요로 만든 불법체류자, 누굴 탓하랴

 

농민들 “불법 운운 전에 대안을 내라”

호남 지역의 한 농촌. 이 지역엔 지난 3월 초를 전후해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칼날이 날아들었다. 수십 명의 외국인들이 연행되고, 인력을 알선한 업자들도 조사 뒤 고발조치 됐다. 그동안은 주로 외국인이 마약에 연루되거나 폭행을 저지르는 등 ‘사고’를 쳤을 경우에만 단속반이 등장했는데, 농번기를 앞두고 인력 수요가 한창 상승할 무렵 이렇게 집중 단속을 나온 것은 처음이라며 불만에 가득 찬 농민들이 많았다.

심지어 이번 사태 때문에 한 농민단체가 ‘이렇게 중요한 일에 왜 나서지 않느냐’며 욕설이 담긴 항의 전화까지 받았을 정도로 지역에 도는 위기감은 상당했다. 농민들은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 가서 집회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지 진심을 담아 고민하고 있었다.

“(인력 수급) 대안도 아무것도 없이 무조건 합법적으로 해라. 이건 잘못된 거에요. 겨울 동안은 가만있다가 농사 시작하려고 하니 이러는 게 말이 됩니까. 새로 사람이 들어오더라도 일을 새로 가르쳐야 하는데, 이 영농철에 그게….”

농촌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잡혀가면, 책임은 인력을 알선한 업자가 진다. 인력을 소개받은 농민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진 않지만, 문제는 이러한 위기감이 이미 천장까지 치솟은 인건비를 더욱 상승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결국 농가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게 뭐냐면, 사람이 없으면 인건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자기가 먼저 일을 시작해야 하니까, 농가가 돈을 먼저 올려버려요. ‘이만큼 더 줄 테니까 제발 구해주세요’가 되는 거죠.”

들쭉날쭉한 소득으로 고통 받는 대부분의 농가에게 인건비는 가장 부담스러운 지출이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구하지 못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없다.

남자를 기준으로, 이 지역에선 올해 최저시급이 8,250원으로 대폭 인상되기 전에 이미 하루 10시간 노동의 일당이 10만원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사태 때문에 부담을 느낀 인력사무소들이 품삯을 조금 올릴 거라는 말도 들려온다.

“어떤 상황이 생기냐면, 여자는 상대적으로 시세가 낮아서 보통 7만원인데, 사람이 없으면 9만원·10만원까지도 올라가요. (남자는 먼저 다 나갔으니까) 이거라도 주고 쓰시라고 그래요.”

내·외국인의 구분은 따로 없었다. 농민들의 말에 따르면 농촌에서 만큼은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시장에 의미 있는 숫자의 내국인 인력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고령화 돼서 내국인은 거의 없어요. 젊은 사람들이야 9만원, 10만원 준다 해도 안 오고요. 아주 가끔 도시에서 관광버스에 사람 채워서 오긴 오는데, 우리 농가들하고 싸워요. 기본적인 지식도 없고, 일할 자세도 안 돼 있으니까.”

 

인력사무소도 할 말은 있다

“하루 전에 얘기하시면~ (주문이 밀려서) 좋은 애들은 다 잡혀 있고 없어요.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얘기하셔야 돼요. 예, 저희 애들 고추는 잘 따요.”

이날 찾아간 면소재지의 소규모 인력사무소들은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갔음에도 바쁘게 영업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짧은 시간 동안 서너 명의 농민이 직접 찾아오거나, 혹은 전화로 공급을 요청했다.

“애들이 단속 때문에 다 빠져나가버려서, 원래 20명 정도 데리고 있었는데 절반으로 줄었어요. 들어오질 않아요. 여기가 밭이 많아서 그래도 일이 많은 편인데.”

면의 소규모 사무소들은 농민들의 수요와 편의를 위해 태어났다. 대부분 농사짓던 농민이 인력수급에 골머리를 앓다 직접 알아보는 과정에서 겸업을 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허가와 무허가가 공존했으나, 어쨌든 불법체류자를 알선하므로 불법 영업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는 마을 이장이 봉사 정신(?)으로 직접 거주지를 마련해 소개비 없이 주민들에게 노동자들을 알선하는 경우도 있었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가지지 아니한 외국인의 고용을 알선·권유한 사람은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한번에 10명 이상을 알선한 것으로 드러나면 전업으로 간주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의 강도가 높아진다.

“바쁠 때 되면 전쟁이에요. (농민들이) 사람이 없다는데 사람을 안 줄 수도 없고. 안 주면 나쁜 새끼라고 욕하니까 어떻게든 인원을 맞춰주려고 무진 애를 써요. 우리나라 여자들 9만원을 주고 밭에서 일 하라고 해봅시다. 할 사람도 없거니와, 구해도 나이가 70이에요. 허리가 굽어 있어요. 일 못해요. 농민들도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가격도 비싼데 일 못하는 사람을 써라? 저희가 하는 게 불법이긴 불법이에요. 하지만 최저임금으로 농촌에서 일할 (우리나라) 사람, 없다고 장담해요.”

사무소들은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이 없으면 농촌 인력 공급 자체가 멈춘다고 강조했다. 이날 찾은 대부분의 업자들 모두 인근 농민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공생을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외국인들이 되살리는 지역상권

“애들이 겁먹어가지고 어디 돌아다니질 못해요. 밤에는 막 하우스에 숨어있고. 불쌍해요. 애들이 돌아다니지 못하면 문제가 또 뭐냐면, 상권도 죽어요. 생기는 돈 엄청 쓰거든요, 걔네들.”

“편의점에서 아침에 밥 사먹고, 담배 사고. 농번기에 면마다 몇백명이 그런다고 생각해봐요. 정말 쓰는 돈의 양이 농담 수준이 아니거든요.”

이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심정이 섞여 내놓은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농민들과 인력소개업자 모두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은 농업 현장에서 노동력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무너져가는 지역 경제를 그나마 버틸 수 있게 하는 버팀목 역할도 도맡고 있다는 것이다. 불법체류자들로 인해 농촌이 돌아간다는 말 그대로다. 흔히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번 돈을 전부 고국으로 가져가기만 한다는 인식이 퍼져있지만, 현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단속 나오셨어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상점을 직접 운영하거나,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또한 이번 단속의 여파를 체감하고 있었다. 지역농협 하나로마트를 찾아가 매장을 찾아오는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해 묻자 직원으로 근무하던 여성은 잘 모르겠다는 대답부터 내놓는다. 코트를 입은 기자의 차림이 공무원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명함을 내밀어도 한사코 답변을 거부하다가, 때마침 아까 인력사무소에서 만났던 농민이 매장에 들어와 안전(?)을 보장하자 그제야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일을 마치는 저녁에 주로 물건을 사러 오기 때문에 폐점 시간이 약간 늦춰진 게 사실이라며, 본인의 집도 농사를 짓고 있어 앞으로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질 것 같다는 걱정을 내비쳤다.

“읍은 그나마 나아요. 여기는 면이잖아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다 치면 농사일 하시는 분들은 물론이고 지역 경제도 타격이 심각할 거에요. 특히 여름 영농철 같은 경우에는 외국인들 영향이 엄청 커요. 지금도 겨울에 생기는 손해를 여름에 겨우 메꾸는 정도로 밖에 영업이 안돼요. 점주인 제게 돌아오는 인건비 따져보면 시급으로 5,000원도 안 나오는 달이 많죠.”

“저희는 겨울철에 일이 없을 때는 매출이 줄어요. 그분들이 계시는 거랑 안 계시는 거랑 많이 다르죠. 여름에는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해요. 집에서 우리나라 재료로 해먹는 음식은 입맛에 완전히 맞지 않는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식사를 때우는 비중이 꽤 돼요. 간편식이나 도시락, 햄버거, 음료수가 주로 많이 나가요.”

면소재지의 편의점이나 마트들은 하나같이 매출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게의 유지 여부를 좌우할만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미 버티기 힘들 정도로 농촌의 상권은 죽었지만, 그래도 농번기에 몰리는 외국인노동자들의 구매력으로 근근히 먹고 산다는 얘기를 했다.

“저희 매출의 20%는 된다고 봐요. 요새 시골에 힘든 일 하실 분들이 없어요. 논농사는 기계로 하지만 밭은 그게 안 되잖아요. 사람이 다 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이 다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그분들이나 저희나 타격이 크죠.”

※취재원 다수의 요청에 따라 모든 취재원과 지명을 익명으로 처리했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