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 도매권역 시설현대화 “생존 위협받는 사람 없어야”

청과직판·일부 매참인·노점상
현대화로 생활기반 붕괴 우려
서울시공사 ‘소통능력’ 시험대

  • 입력 2019.04.07 18:00
  • 수정 2019.04.07 20:53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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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가락시장 시설현대화 공사로 인해 일부 상인들이 생존기반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사진은 가락시장 내에서 영업 중인 노점상들.
가락시장 시설현대화 공사로 인해 일부 상인들이 생존기반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사진은 가락시장 내에서 영업 중인 노점상들.

가락시장 도매권역 시설현대화를 앞두고 팰릿출하 의무화와 시장도매인제 도입, 점포면적 확보 등 출하자와 주요 유통주체들을 중심으로 갖은 진통이 양산되고 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돌려보면 시설현대화로 인해 보다 절박한 위기에 몰린 사람들이 있다. 가락시장 안에 자리잡고 경매 이후의 분산활동에 조력하는 청과직판·매매참가인·노점상 등의 상인들이다.

가장 급한 불은 청과직판이다. 청과직판상인은 중도매인들로부터 구입한 상품을 소분·가공해 도·소매 판매하는 상인들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사장 김경호, 공사)는 기존 청과직판시장 부지를 시설현대화 도매권 1공구로 낙점하고 상인들을 종합식품상가 ‘가락몰’ 지하로 이전시키고자 했으나, 불편한 물류환경과 공기 질 저하, 소비자 접근성 취약을 이유로 2015년부터 격렬한 이전 반대 시위가 전개된 바 있다.

긴 싸움 끝에 현재까지 340여개 점포가 가락몰 이전을 완료했지만 예상했던 매출감소 및 환경문제에 직면해 있고, 아직 170여개 점포가 이전을 보류한 채 도매권 2공구로 자리를 옮겨 영업 중이다. 오는 9월까지 전원 이전키로 합의는 돼 있지만 서로가 만족할 만한 조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애당초 가락몰 지하의 설계 자체가 청과직판상인들의 영업구조에 맞지 않게 돼 있어 이전 상인들과 미이전 상인들 모두 “이대로라면 도저히 영업을 계속할 수 없다”며 심각한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가락몰 지하1층에 위치한 신설 청과직판시장. 이전을 완료한 상인들은 불편한 물류와 공기 질 저하, 신규 고객 유치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가락몰 지하1층에 위치한 신설 청과직판시장. 이전을 완료한 상인들은 불편한 물류와 공기 질 저하, 신규 고객 유치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청과직판이 합법의 영역이라면 매매참가인과 노점상은 불법의 영역에 놓여 있다. 먼저 매매참가인이란 개설자에게 신고를 하고 중도매인과 함께 경매에 구매자로서 참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여기까지는 합법이지만, 매참인 중 일부가 낙찰받은 물건을 반출하지 않고 시장 내 공간을 무단 점유하면서 도매업을 누리는 경우가 있다. 총 180명의 가락시장 매참인 중 약 60명이 장내영업을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공사 추정).

매참인 장내영업은 공공의 공간인 경매장을 임의로 점유한다는 점, 정당하게 임대료를 내고 영업하는 중도매인들과의 형평성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도매시장의 고질적인 골칫거리로 꼽힌다. 하지만 이들은 가락시장 개장 초기부터 시장 분산능력 확대에 공헌해 왔고, 도매법인의 유치와 공사의 묵인으로 오랜 기간 생업기반을 다져왔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단칼에 청산하기엔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다.

최근 공사가 ‘새벽 3시 이후 도매권역 영업 제한’ 방침을 밝히면서 이들 매참인들이 반발하고 있다. 설상가상 수확을 앞둔 일부 양파 출하자들도 공사를 힐책하고 있다. 장내영업 매참인들의 상당수가 양파에 포진해 있어 경매 참가자 감소로 인한 경락가 하락을 우려한 것이다. 공사와 매참인들이 논의를 거듭하고 있지만 눈에 띄는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노점상은 경매장 밖 공간에 자리를 잡고 주로 소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마찬가지로 가락시장 개장 초기부터 분산능력 확대에 기여한 사람들이며, 거론한 세 주체 중 가장 영세하고 고령화된 상인들이다. 규모는 인원 기준 1,000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점상에 대해선 공사가 비교적 명확한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가락몰 2층 위 옥상으로 이전시킨다는 것이다. 상인 대표들도 ‘문화예술전통시장’ 조성 계획을 제안하는 등 일단은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문제는 바로 지하에 위치한 청과직판과 품목경합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먹거리와 소품 등 노점상들의 업종전환을 유도한다지만 고령 상인들이 얼마나 탄력있게 따라올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수 년째 활성화에 실패하고 있는 가락몰의 현실을 비춰보면 옥상까지 충분한 고객을 유치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근심거리다.

가락시장 시설현대화는 출하자나 대규모 유통주체들에게도 부담이지만 시장 내 수많은 상인들의 생존과도 연관돼 있다. 김우성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송파지역연합회 지역장은 “노후된 건물과 급변하는 유통환경 속에 시설현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안에 상인들과, 하다못해 박스 줍는 할머니까지 그 누구도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이 있어선 안된다. 그런 사람들까지 끌어안는 현대화사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호 공사 사장은 취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자신의 최대 장점을 ‘소통능력’이라 자신해 왔다. 도매권역 시설현대화 착공을 앞두고 공사와 상인들 서로가 물러설 곳 없는 상황에 처한 가운데, 공사의 소통능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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