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71] 말과 행동

  • 입력 2019.04.07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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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지난달 25일은 양양군 학교급식 설명회가 있는 날이었다. 오후 2시부터인데 1시쯤 양양군 문화회관에 아내와 함께 나갔다. 이미 추진단장 부부와 임원 몇 분이 오전부터 나와 계셨고 준비가 완료된 듯 조금은 한가로워 보였으나 농민들이 농사철에 얼마나 참석할지 약간 긴장이 되는 듯했다. 3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강당엔 대형 플래카드도 걸렸고 입구에는 참석자 방명록과 회원 가입신청서 등이 준비돼 있었으며 다과도 있었다.

이렇게 설명회장 준비상황을 소상히 소개하는 이유는 관의 지원은 받았으나 설명회 준비는 농민 추진단이 직접 맡아 진행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농민들은 사전에 면단위로 이뤄지는 이장단 회의에 나가 설명도 하고, 군 전체에 30여개의 플래카드도 직접 달면서 준비도 했다.

2시가 가까워 오자 농민들 덕에 대강당이 보기 좋을 정도로 자리가 찼고, 군·의회·기술센터 관련자들도 축하를 위해 참석했다. 영양사 교사가 친환경급식의 필요성과 중요성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추진단의 급식추진에 관한 설명도 이어졌다. 다소 미흡하긴 했으나 설명회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많은 농민들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사실 양양군의 학교급식사업은 이제 그 첫발을 내디딘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나는 지켜보았고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다 알고 있기에 농민 추진단장과 임원들의 수고와 희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게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고 집배용 차량도 인력도 없는 그야말로 맨바닥에서 시작하는 형국이니 그럴 만도 했으나, 금년 초부터 조금이나마 실제 급식납품이 이뤄지는 가운데 오늘 군 전체의 학교급식 설명회를 한다하니 내가 다 흥분되기도 했다.

양양은 농민이 40% 정도 되는 전형적인 농촌으로 중소농과 고령농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버섯을 제외하곤 비닐하우스가 거의 없는 지역이어서 겨울철에는 채소류 생산이 중단된다. 최근에는 동해안의 서핑 명소로 떠오르고 바다와 설악산을 중심으로 관광과 서비스 산업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미세먼지도 거의 없는 아름답고 청정한 곳이다.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우리지역에서 가장 필요한 사업이 제대로 된 로컬푸드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관내 농민단체는 물론 관에도 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들 공감은 하지만 소극적이었고 엄두를 못 내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50대의 젊은 농민 한두 분이 로컬푸드 사업의 일환으로 일단 양양의 친환경 농산물을 속초·양양 관내 학교급식에 납품하는 작업을 속초시, 양양군, 교육지청, 기술센터 등을 직접 쫓아다니며 겨우 성사시켰다. 일단은 소량이지만 양양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쌀과 표고버섯, 사과, 시금치 등의 납품이 시작됐다. 추진단장과 임원들이 직접 수집도 하고 배송도 하고 있다. 앞으로 군에서도 적극 지원할 예정이고 필요한 예산도 수립할 것으로 기대된다.

말만 하는 사람보다 몇 배나 더 소중한 사람은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열 일 제쳐두고 관내 아이들에게 가락동 시장에서 사오는 농산물이 아니라 우리 지역에서 생산된 좋은 농산물을 먹이고, 중소농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소수의 행동하는 농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제 막 급식사업을 시작한 이들이 지치지 않도록 말 만으로라도 적극 지원하고 도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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