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소비자가 던진 의문에서 농산물 수급조절정책의 답을 찾다

  • 입력 2019.04.07 18:00
  • 기자명 백혜숙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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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숙

언제까지 풍년의 역설, 농부의 역설(Farmer’s paradox)을 말하며 생산지 폐기에 의한 농산물 수급조절을 되풀이할 것인가! 지금은 집단지성의 시대이다. 농촌·농업·농민의 뼈아픈 현실이 유통인과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생산지에서 소비지 관점으로 바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본다면, 더 다양하고 의미 있는 해결 방법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진도에서 생산된 대파의 1㎏ 한 단 특품(1등) 경매가격이 500원 하던 날, <공정먹거리소비자모임>은 ㎏당 2,000원이라는 ‘공정가격’을 지불, 총 200㎏을 구매해서 <송파구 주부환경협의회>와 함께 대파김치를 담가 지역 내 복지관에 기부하는 ‘생산자 소비자 한마음 나비효과, 진도농부와 송파주부의 대파김치 건강나눔’ 행사를 했다. 같은 날 <서울시 상생상회>에서는 대파값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파 농가와의 상생을 위해 ‘진도대파 특별전’을 열어 소비자에게 한 단(1㎏)에 1,000원 가격으로 판매했다.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가격정보에 따르면 대파의 월평균 소매가격은 2,267원/㎏(3월 20일, 상품 기준)이었다.

<공정먹거리소비자모임>은 밥상에 오르는 음식물이 “나의 생명권과 생산자의 생존권에 도움이 되는 공정한 과정을 통해 오는 먹거리일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고 행동하는 소비자 모임이라고 한다. 나의 생명권과 생산자의 생존권이 직결된다고 본다. “제대로 생산돼야 제대로 먹을 수 있고, 먹어야 생명이 유지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행사에 참여한 회원들은 여러 의문을 품고 있다고 했다. “경매가가 500원이면 농민이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까?”, “생산비는 도대체 얼마일까?”, “경매가격은 500원인데, 왜 소비자가는 4배나 될까?”, “생산비에도 한참 못 미치는 500원이라는 경매가격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이렇듯 다양한 의문도 풀고 주변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해 행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대파 생산비는 경지면적 1평 기준에 1만원이다. 농자재, 트랙터와 관리기 비용, 관수비, 김매기 비용, 농약비, 퇴비 및 비료대, 인건비, 임차료 등 생산비 8,000원에 재생산 준비금 2,000원을 더한 금액이다. 1평에서 생산되는 대파량은 대개 12㎏이므로 ㎏당 생산비는 약 850원이다. 대파 1㎏을 밭에서 뽑아 껍질을 벗기고 단을 묶고, 망에 넣어 포장하여 시장까지 운송하는 출하비는 800원이고, 박스 포장하는 경우에는 1,000원이 든다. 따라서 생산비에 출하비를 더하면, 최소한 1,650~1,850원/㎏에 경매가격이 형성돼야만 농민의 생존이 보장되는 것이다.

‘얼굴 있는 가격, 가치 있는 물품’을 지향하는 <한살림>이 제시한 배추 1포기 생산비는 2,433원(2018년 기준)이다. 가격구조를 살펴보면, 생산자 소득(생산자 본인 인건비) 919원, 경비·기타(전기요금·토지임차료 등) 333원, 재료비(친환경자재·물품포장비 등) 301원, 인건비(일일노동자 고용) 151원, 회원출자금(생산비의 0~2%) 18원, 공동체 기금(생산비의 0~2%) 18원, 생산안정기금 및 가격안정기금 등 37원, 운영비(물류비·카드수수료·조합원 활동비 등) 656원으로 나뉜다. 일손 구하기 힘든 곳에서 급변하는 날씨와 싸워가며 애써 키워도 외관상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게 농산물이다. 숨은 노력이 상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농산물을 묵묵히 키워낸 생산자에게 지불해야 할 정당한 가격은 과연 얼마일까?”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송구한 가격이다.

이 지점에서 소비자들은 의문이 들 것이다. 농민들이 최저가격을 제시하고 유통과정에 드는 경비와 이윤을 투명하게 공개해 이를 토대로 적정가격을 산출한다면, 생산자의 소득도 보장하고 소비자는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접근성도 좋아지는 일석이조 아닌가? 왜 이러한 정책을 펼치지 못하는가? 상식적인 의문이다. 유통과정에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참여해 복잡한 유통구조를 형성한다. 복잡하다 해서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일부만이라도 개선한다면 생산자와 소비자에게도 이롭고, 유통인 또한 적정 이윤을 가져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본다. 현재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경매 혹은 비상장거래 거래방식 외에, 산지에서 가격이 정해진 농산물의 경우 중도매인들이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유통단계를 줄이는 방안이 있다.

한편으로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이익이 되는 유통정책을 과감하게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값싼 수입 농산물 때문이라면 국민 밥상 품목인 배추, 무, 고추, 마늘, 양파, 대파라도 대도시별 소비량을 파악해 필요한 만큼 계약재배를 하고 최저가격을 보장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FTA 위반이 걱정된다면 “공공급식시장에서 우리 농산물을 차별적으로 우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으므로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군부대, 교정시설 등으로 공공급식시장을 확대하고, 조식서비스라는 아침 공공급식시장을 새롭게 개척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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