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보는’ 학교급식을 만들자

  • 입력 2019.04.01 00:00
  • 수정 2019.04.02 09:56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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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학교급식지원센터가 운영되려면 설치와 유지에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그 예산을 아끼고 학교급식 전자조달시스템(eaT)을 쓰라는 것이다. eaT는 국가계약법에 있는 한 공공성이 있다고 본다.”

어느 토론회에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관계자가 내놓은 답변이다. 학교와 급식공급업체 간 계약에서 품질확보 및 가격의 공정성,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지난 2010년 8월부터 도입한 eaT 시스템을 현재는 절대다수의 학교가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초·중·고교의 89%가 eaT 시스템을 학교급식 거래에 활용하고 있다.

eaT 시스템은 서류 및 현장 심사를 거쳐 일정한 자격을 보유한 업체가 입찰에 참여하도록 한다. 그 이후의 거래는 각 학교의 선택에 맡긴다.

이 시스템은 급식비리를 막는 데엔 일정 효과를 본 걸로 평가된다. 그러나 식재료의 품질 및 안전성 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학교가 따져볼 항목이 사실상 가격 밖에 없는 저가 경쟁 입찰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먹거리를 구입할 때 흔히 ‘장을 본다’고 표현한다. 직접 눈으로 먹거리를 확인하고 만져도 보고 때때로 시식도 하며 품질과 안전성을 확인한다. 나아가 상인의 말을 들어보면서 거래의 신뢰도도 따져본다.

eaT 시스템은 비대면 거래가 핵심이어서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됐다. aT는 eaT 시스템을 운영하며 연간 60억원의 수수료를 받는 걸로 추정된다. 그런데 eaT 시스템을 통한 거래규모는 2015년 말 2조140억원에 달한다.

일정 자격을 인정받아 eaT 시스템에 들어온 업체들 중 식품위생 위반, 원산지 위반, 약관 위반 등 각종 불성실행위로 적발되는 업체가 늘어나도, 학교에서 식중독 발생이 계속 일어나도 aT는 책임지지 않는다. 어쩌면 시장규모에 비해 고작 연간 60억원의 수수료를 받는 aT로선 억울한 책임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학교급식지원센터가 필요하다. 지역마다 설립되는 학교급식지원센터는 압축해 설명하자면 학교와 학부모에게 ‘장을 보는’ 과정을 보장해주는 공적기구다. 센터 설치와 운영에 eaT 수수료보다 많은 예산이 들어가더라도 비효율이라 해석할 수 없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학교급식을 만들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투자로 이해해야 한다.

학교급식 공급과정이 서류와 단가로 계산되는 효율과 편의의 영역에서 ‘장을 보는’ 영역으로 바뀌면 식재료 선택이 달라진다. 가격만 따지면 같은 친환경 중에서 유기농인증 대신 가격이 낮은 무농약인증을 선택하는 게 순리다. 그러나 장을 보는 학부모의 입장이 되면 친환경 본래의 가치에 더 충실한 유기농을 선택할 수 있다.

소비에 따라 생산도 달라진다. 강화도의 친환경쌀농가들은 충분히 유기농으로 전환할 수 있지만 가격경쟁력 때문에 무농약에 머물러 있는 사례도 있다. 일선학교에서 가격이 비싸더라도 유기농쌀을 우선 선택한다면 유기농 전환이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이다.

그게 바로 공공성 아닐까.

학교급식의 효율적인 운영을 넘어 식재료의 품질, 학생들의 건강까지 고려한다면 학교급식지원센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진은 점심시간에 급식을 받고 있는 한 중학교 학생들의 모습. 한승호 기자
학교급식의 효율적인 운영을 넘어 식재료의 품질, 학생들의 건강까지 고려한다면 학교급식지원센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진은 점심시간에 급식을 받고 있는 한 중학교 학생들의 모습.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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