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농경사회 사람들] 정재룡 영감②

  • 입력 2019.04.01 00:00
  • 기자명 이중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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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기 시인

수염 한 올 없이 턱 주변이 해말간 쉰일곱 정재룡은 영감님으로 불린다. 그는 해방 직후부터 능금농사를 시작해 돈을 꽤나 번 사람이다. 머슴 둘이 여자 인부 일고여덟을 데리고 일해야 할 정도로 능금밭 면적이 넓은 만큼 정재룡 영감 발치 또한 넓었다. 그는 겨울이면 아침마다 읍내로 출근해 계란 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를 마시는 나하나다방부터 들러 나그네다방을 거쳐 목화다방 순으로 다방 순례를 한다. 가는 곳마다 마담에 아가씨들과 주방아줌마까지 불러 앉혀 커피 한잔씩 돌리는 건 오래된 습관이다. 전화통에 불이 나기 시작하면서 커피 배달을 가기 위해 반쯤 비운 찻잔을 든 채로 여자들이 자리를 뜨면 만나야 할 사람들이 하나둘 어슬렁어슬렁 팔자걸음으로 나타난다.

그가 가는 다방마다 만나는 사람들 부류가 다르다. 아침 일찍 나하나다방으로 몰려가 쌍화차를 마시는 치들은 군청과 경찰서 고위직들이다. 그들은 날마다 출근길에 여기 들러 뻐근한 목과 어깨 근육을 아가씨들 손으로 달래고 어젯밤 술로 쓰린 속은 쌍화차로 달랜다. 다음은 목화다방이다. 거기에는 공판장 경매사와 큰손의 중매인들이 먼저 나와 연탄난로 주변에 빙 둘러앉아 있다. 이미 찻잔을 비운 그들에게 정재룡 영감은 또 커피 한 잔씩 내놓게 한다. 그리고 그들이 먼저 마신 찻값까지 계산까지 한 뒤 오늘 서울 공판장 능금 시세를 물어보면서 한 자리 차지하고 일행이 된다. 영천에는 공판장이 두 개나 되지만 겨울 경매는 한산하다. 대형 저장창고를 가진 중매인들은 가을부터 능금을 사들여 쟁여놓고 서울로 출하하기 때문이다. 목화다방은 중매인들이 능금가격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다. 그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면 정재룡 영감은 나그네다방으로 건너가 남문거리 가근방에서 상가를 가진 계원들과 노닥거린다.

발치 넓은 정재룡 영감 다방 순례가 끝나면 이윽고 점심시간이다. 영감은 혼자 빠져나와 말죽거리 한 식당으로 향한다. 그러나 식당 출입문은 버리고 골목 안으로 난 쪽문을 이용해 안방으로 들어간다. 마당이랄 것도 없는 작은 뜰을 가로질러 안방으로 들어서는 걸음걸이가 익숙하다. 알맞게 데워놓은 구들목에서 식당 주인이 직접 들고 온 밥상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마흔을 갓 넘긴 식당 주인은 정재룡 영감이 몇 년 전 서울의 한 술집에서 데려와 이 집에 앉혔다. 한두 해나 때론 삼년쯤, 영천 물정을 익히게 한 뒤 식당을 차려주면 주머니에서 돈 나갈 일이 없어진다. 영감이 마누라 몰래 구해놓은 집은 이것 말고도 두 채나 더 있다.

정재룡 영감 집으로 서울 한 공판장에서 전화가 오면 12월도 꽤 깊어진 때이다.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정재룡 영감은 마고자차림으로 능금창고 이중문을 연다. 한 자가 넘는 두께로 된 황토벽 창고는 두 자 가까이 바닥을 파내고 지어서 언제나 습기를 충분하게 머금고 있다. 천장 위에는 습기 유지와 방한용으로 왕겨를 두텁게 깔고 그 위에 밤송이를 빼곡하게 박아놓아 쥐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겨우내 능금을 보다 싱싱하게 저장하려면 창고는 이렇게 튼튼해야 한다. 온몸에 힘을 줘야할 만큼 묵직한 안쪽 문을 열자 18단으로 쌓아올린 수천 개의 나무상자에서 은은하게 능금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정재룡 영감은 이윽히 창고 안을 몇 차례 휘둘러본 뒤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물러나자 머슴 둘이 재바르게 움직인다. 입구 쪽에서부터 어긋나게 쌓아놓은 나무상자를 헐어내 5단으로 쌓아 1차 계단을 만든 뒤 상자위에 송판을 깔아 딛고 올라 그런 방식으로 2,3차 계단을 만든다. 그렇게 해놓아야 18단으로 쌓은 5관들이 능금상자는 쉽게 들어낼 수 있다. 내일부터 출하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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