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자립과 자치의 나라

  • 입력 2019.04.01 00:00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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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연구원

올해는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서 범정부 차원의 기념사업과 활동들이 추진되고 있다. 필자는 역사 전공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근현대사, 특히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이를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단체인 조선의용대(군)의 중국 내 활동 지역을 탐방하고 그 내용을 동료들과 책으로 펴낸 적이 있고, 김구 선생의 비서이자 김원봉의 동지였던 불굴의 여성독립운동가 이화림 지사의 삶도 발굴해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필자가 이렇게 우리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이유는 내가, 아니 우리가 우리의 근현대사를 너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사만 하더라도 김구, 유관순, 안중근, 윤봉길 등 소수 유명 독립운동가들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동휘, 여운형, 김원봉, 윤세주, 김알렉산드라, 최재형 등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활동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독립운동사는 국내와 상하이, 충칭 그리고 하얼빈과 블라디보스톡 등 일부 지역에서만 전개된 운동이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지역에서 전방위적으로 펼쳐졌던 스펙타클하고 눈물겨운 투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해방 이후의 역사였다. 나는, 아니 우리는 해방 이후의 역사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 같다. 해방은 어떻게 됐는지, 우리는 어떤 나라를 세우려고 했는지, 우리는 왜 분단이 됐는지, 그리고 우리는 왜 일제강점기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우리 민족들끼리 죽여야 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해방 이후 3년, 우리는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군주제가 아닌 민주공화제를 임시헌법으로 제정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계승하지 못하고 미군정에 정권을 맡기고 그에 편승한 정치인들에 의해 우리 민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을 경험했다.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 누구의 책임인가? 아직도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있다. 제주 4.3과 여순민중항쟁에 대한 접근 자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기의 대상이었다.

해방 이후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우리가 독립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중앙에서는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건국준비위원회가 정부의 구성을 준비하고 있었고 지역에서는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자립과 자치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여운형은 암살됐고 이승만을 앞세운 미군정은 다시 친일파를 등용해 자립과 자치의 싹을 잘라버렸다. 해방 후 농업정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건준은 해방정국에서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설정해 계획적으로 식량을 관리했지만 미군정은 식량을 통제하는 것은 사회주의정책이라고 반대해 시장에 맡겼다. 그로인해 식량은 매점매석의 대상이 돼 가격이 폭등했다. 미군정은 부랴부랴 미곡수집령을 내려 식량 수집에 나섰고 농민으로부터 시장가격의 5분의 1정도의 가격에 사들였다. 강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경무부 수사국장이었던 최능진, 훗날 이승만에게 맞서기도 했던 그는 당시 상황을 “경찰들이 농가로 찾아가 무턱대고 쌀을 내놓으라고 강요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들에게 수갑을 채워 가두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미군정의 강압적인 미곡수집령은 이후 1946년 10월 대구를 비롯해 전국적인 봉기를 야기했고 이는 곧 제주 4.3과 여순민중항쟁의 가장 근원적 요인이 됐다. 건준과 인민위원회의 실패는 곧 온전하게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기반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해방 이후에도 자립과 자치를 하지 못하고 미국과 독재정부에 의존했다.

필자가 농민기본소득, 즉 조건 없는 농민수당을 주창하면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민관 협치의 농민기본소득(농민수당) 추진위원회의 설립·운영이다. 감히 말하자면 이 추진위원회는 해방 정국에서 실패한 인민위원회의 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자치와 자립을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완성이 농민기본소득제의 관건이자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 각 시군 단위에서 농민회를 중심으로 농민기본소득 추진위원회 혹은 농민총회가 구성되고 각 지역에서 어떤 농민수당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희망적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군주가 아닌 민이 주인인 세상을 제대로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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