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와 한국경제

  • 입력 2019.04.01 00:00
  • 기자명 이해영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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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한신대 교수.
이해영 한신대 교수.

농산물유통업체인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내 구리청과가 매각되었다. 인수과정은 매우 급박하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자는 포시즌캐피탈파트너스와 웨일인베스트먼트인데 인수를 위해 290억원이 지불되었다.

2015년에는 마찬가지 농산물경매업체인 서울 가락시장의 동부팜청과(현 동화청과)가 칸서스자산운용 주식회사에 540억원에 매각된 적이 있는데, 1년 후인 2016년 칸서스측은 동부팜청과를 한일시멘트 자회사인 서울랜드에 약 600억원에 팔아치워 1년 만에 약 4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뒤 ‘엑시트’, 곧 손을 털었다.

구리청과는 구리지역 농수산물시장의 최대 경매업체다. 생산자 곧 농민으로부터 과일이나 채소 판매를 위탁받아 이를 도매시장에 넘긴 뒤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수익구조를 갖고 있다. 매년 20억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꾸준히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청과류 도매업은 해당 지자체로부터 면허를 받아야 하는 독점사업이다. 그래서 예컨대 칸서스측도 동부팜청과를 인수했지만 서울시가 대주주변경을 인정하지 않아 혼선을 겪었다.

사모펀드에 매각된 구리청과

여기서 문제가 되는 인수자들은 모두 이른바 사모펀드다. 곧 포시즌캐피탈파트너스는 신생 사모펀드이고 웨일인베스트먼트는 IBK투자증권 출신들이 만든 사모펀드인데 종자돈은 KDB산업은행에서 나왔다. 그러면 한국에선 아직 좀 낯선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는 무엇인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모펀드와는 달리 ‘사모(私募)’는 말 그대로 사적으로 비밀리에 모집된 자금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골드만삭스나 제이피모간 같은 투자은행(IB)이나 공모펀드를 조성해 투자하는 국내의 미래에셋 같은 자산운용사와는 다르다. 조지 소로스가 대표격인 헤지펀드가 수시로 기업을 사고파는 데 비해, 사모펀드는 이보다는 장기간인 5년 정도까지도 기업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마찬가지 넓은 의미의 사모펀드에 속하지만 기술력을 갖춘 이른바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하는 경우 이를 모험자본 즉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이라고도 한다.

사모펀드의 행동패턴은 대개 유사하다. 먼저 돈을 모으고, 구매할 물건 곧 투자대상 기업을 물색한 뒤, 투자를 진행 회사를 인수합병 해, 이 회사를 구조조정 등을 통해 가치를 키워, 마지막으로 투자자금 회수(엑시트), 곧 회사를 팔아치우고 나가는 것이다.

사모펀드는 그래서 회사를 최대한 싸게 사서 최대한 비싸게 팔거나, 회사를 구조조정, 경영합리화, 인원감축 등을 통해 ‘밸류업(value-up)’시키거나, 회사의 채무를 상환하는 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그렇다면 보자. 여의도의 크고 작은 손들이 갑자기 한국의 농업, 농촌, 농민을 지극히 사랑해서 아니면 귀농, 귀촌 준비를 위해 이렇게 농수산물 도매업에 눈길을 돌리는 걸까. 최고급 수트를 차려입고 최고급 차를 굴리는 금융엘리트들이 농민들의 갈퀴 같은 손을 움켜잡고자 애쓰는, 도무지 어색한 이 부조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공영도매시장 안에 들어있는 농수산물유통업은 지자체의 면허만 획득하면 안정적인 현금이 확보되는, 비록 황금알을 낳는 거위 곧 대박은 아니지만 500억원 전후 중소규모의 국내 토종 사모펀드가 실적을 쌓고 이 과정에서 ‘중박’ 정도는 기대해 볼 수 있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처다. 이들의 목적이 초우량 농관련 기업 육성이 아니라, 키워서 최대한 비싸게 파는데 있음은 실로 불을 보듯 뻔하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금융’과 문재인정부의 ‘혁신금융’은 무엇이 다른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 왔음에도 오히려 사모펀드를 육성하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려는 정책방향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달 21일 서울 을지로 IBK 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혁신금융 비전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정부의 ‘창조금융’과 문재인정부의 ‘혁신금융’은 무엇이 다른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 왔음에도 오히려 사모펀드를 육성하고 각종 규제를 철폐하려는 정책방향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달 21일 서울 을지로 IBK 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혁신금융 비전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최대한 싸게 사서 최대한 비싸게 판다

그런데 최근 갑작스레 ‘혁신금융’이 혁신성장의 동력으로 호명되면서 이런 현상의 배후에 무언가 새롭고,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법무부 등 관련 부처는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달 21일 대대적인 ‘혁신금융 비전선포식’을 진행했다. 여기서 ‘혁신금융 추진방향’을 발표, 대출, 자본시장, 정책금융 등 분야별로 맞춤형 정책과제가 제시되었다.

‘금융 양극화’ 해소라는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방향과 더불어,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자본시장정책으로 ‘대규모 모험자본육성’이다. 이번에 발표된 자본시장 특히 사모펀드 관련된 정책구상은 이미 작년 9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혁신성장과 일자리창출을 지원하기 위한 사모펀드체계 개편방향>에서 예고되었던 바다.

그 핵심적인 배경은 이러하다.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 등 성장단계 기업 지원에 있어 정부차원의 정책금융은 한계가 있고 ‘비올 때 우산 뺏기’식의 민간 중심의 자금 공급 또한 충분치 않다. 바로 여기에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사모펀드가 등장한다. “이를 충족하는 우리 금융시장의 플레이어는 사모펀드로서, 사모펀드가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동력’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제도개선 추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자본시장법상의 각종 규제철폐가 우선 요구된다. 대표적으로 지분 10% 보유 여부로 구분되는 경영참가형과 전문투자형으로의 사모펀드 이원화 규제 등으로 인해 국내 대기업투자가 불가능하고 나아가 적극적 M&A도 한계가 있으므로 이를 전면 철폐하자는 말이다. 또 49인 이하로 되어 있는 사모펀드 투자자 수도 100인 이하로 대폭 확대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법 개정안이 제출된 상태다.

사모펀드 육성·규제 철폐에 나선 정부

한국의 등록된 사모펀드는 2011년 181개사에서 2018년 6월 현재 501개사로 급성장하고 있다. 이 중 1조원 이상 규모가 9개사, 5,000억원에서 1조원 규모가 17개사에 달하고 특히 MBK파트너사는 아시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중 압도적인 숫자인 423개사가 일반 사모펀드인데 반해, 창업벤처전문 사모펀드는 극소수인 19개에 불과하다. 현재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시장규모는 60조원에 달하며,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는 310조원 규모다. 그래서 2018년 현재 약 370조 규모의 사모펀드가 조성되어 있는 셈이다.

이처럼 사모펀드 육성과 규제철폐는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동력’을 만들고자 하는 ‘혁신금융’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에서 묘한 기시감을 갖는다. 2014년 4월 3일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옥에서 열린 주가 3,000 시대 국민 토론회에서 말한다.

“박근혜정부가 창조경제를 기치로 삼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수립해 재도약을 추진하고 있지만 성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창조금융”이라며 “자본시장의 성공이 곧 창조금융의 성공이며 창조경제 성공의 핵심이다”, 또 “국내 자본시장에서 앤젤이나 벤처캐피탈을 통한 투자가 저조하고 안정성에 기반한 투자만 늘어나 자본 확충에 대한 성장성이 미흡하다” 

따라서 신 위원장은 지금이 한국 경제의 저성장과 자본시장의 답보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의 기로라면서, “창조금융은 융자나 부채 중심의 기존 금융 지원체계를 투자와 자본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응당한 대가를 받고 창의적인 기업이 자리를 잡도록 하고자 한다”며 국내 자본시장의 역동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모험자본 확충 △사모펀드 규제 전면 개편 △유망기업 상장 유도 △인수합병(M&A) 활성화 위한 기업금융 확대 △파생상품 관련 신시장과 신상품 도입 추진 등을 제시했다.’(<매일경제> 2014년 4월 3일자)

박근혜정부의 ‘창조금융' 문재인정부의 ‘혁신금융'

해서 살피건대 박근혜정부의 ‘창조금융’과 문재인정부의 ‘혁신금융’은 어떻게 다를까.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란 미명하에 사모펀드 규제철폐는 과거 박근혜정부때부터 ‘창조금융’이란 이름으로 금융위 등 경제관료들이 부단히 요구하고 시도해 왔던 아이템이다.

이제 때가 바뀌어 박근혜정부에 이어 한국경제의 저성장기조가 고착되고 나아가 위기조짐을 보이는 현시점에서 이번에는 ‘혁신금융’으로 표지갈이한 뒤 재차 제기되고 있는 셈이다. 이로써 문재인정부조차 금융자본과 경제관료들에 의한 ‘실질적 포섭’단계에 들어선 것인지 우려의 시선이 가득하다.

기업사냥과 ‘먹튀’로 대변되는 사모펀드의 지금까지의 한국에서의 행태만 간단히 일별해도 그렇다. 제1호 먹튀펀드처럼 인식되는 론스타를 필두로 토종펀드라고 해서 살인적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비껴가진 않는다. 토종펀드 대표인 MBK는 과거 서울지역 케이블방송 씨엔엠을 매각하면서 말단 노동자들을 대량해고 했다. 경남도 도시가스사업자 경남에너지의 2대주주인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인수 이후 2차례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사모펀드 맥쿼리는 마창대교 민간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최소운영수입 비용인상을 놓고 경남도와 갈등을 빚었다. 다소 예외적인 OB맥주 사례를 제외하고 사모펀드가 한국 국민경제에 순기능을 한 경우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구조조정, 고배당, 투기성 유상감자 등, ‘단기간 고수익’을 목표로 ‘사기전에 되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사모펀드의 생리다. 이를 통한 기업성장은 오히려 예외이고 더더구나 사모펀드를 기반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에 다를 바 없다.

국제적으로도 사모펀드는 투자 성공사례보다 실패사례가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많고, 나아가 사모펀드가 성장과 고용을 촉진한다는 신뢰할 만한 연구 또한 찾기 어렵다. 대표적 사모펀드 론스타 트라우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우리는 과연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을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어 왔음에도 오히려 역주행하는 정책방향도 납득하기 어렵다. 설사 ‘모든’ 사모펀드가 투기자본이라 할 수 없을지라도, ‘거의 모든’ 사모펀드는 투기성을 본질로 갖는다. 사모펀드를 ‘혁신’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말은 정부가 앞장서 한국 자본시장의 버블과 투기화를 조장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혁신성장이 ‘카지노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글은 필자의 <한국농어민신문> 기명칼럼(2019년 3월 22일자)을 대폭 확장 개고한 것임을 밝혀 둔다.

우리 농정에 대한 속시원한 돌직구, ‘농사직썰’을 매월 1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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