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 입력 2019.04.01 00: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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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제아무리 철이 늦게 들더라도 꽃 안 피는 2월(음력) 없고 보리 안 피는 3월이 없다더니, 철이 이른 요즘의 남녘은 벌써 꽃들이 만개했습니다. 매화, 산수유를 넘어 진달래, 개나리, 수선화, 벚꽃 등이 피는 것으로 보아 이제 중봄으로 넘어가나 봅니다.

꽃 중의 제일은 사람꽃이겠지요. 일전에 드디어 우리 지역에도 여성농민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제일 값진 꽃이 피어났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게 피어날지, 또 이름값을 할 수 있을 지는 시간이 조금 흘러야 알 수 있겠지만 일단 기대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단체를 새로이 만드는 일 중 제일 어려운 일은 역시나 회장을 선임하는 일입니다. 회장이 되어 단체의 많은 것을 책임진다는 데에 따른 부담 때문에 다들 꺼려합니다. 안 그래도 세상살이의 짐을 잔뜩 지고 사는데 또 다른 짐까지 걸머지려니 왜 아니 부담스럽겠습니까?

뭐 또 그 와중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얼굴 알리는 것을 가문의 영광쯤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지요. 단체의 목적을 살리는 일보다 자신의 목적이 앞서 남 앞에 나서는 위인들이야 어디에나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단체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일이 아니라면 그런 상황도 수용하고 사는 것이 세상의 바다이겠지요. 어쨌거나 별 탈 없이 회원들끼리 돌아가면서 맡는 게 제일 바람직하고 올바른 모양새이지요.

그러나 명예도 이익도 없는 순전히 자기보람과 봉사중심의 단체, 그것도 여성농민단체는 상황이 다릅니다. 서로 안 하겠다고 미루기 일쑤입니다. 여럿이 있을 때 떠밀려서는 마지못해 어렵게 결심하고서도, 돌아가서 고심 고심하다가 고사를 합니다. 일단 지명된 이후에는 어떠한 상황에도 받아들이게 마련인데도 부침 끝에 고사하는 모습을 종종 보아 왔으니 이른바 사회공포증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여성농민들이 집안에서나 마을단위로만 생활하다보다 보니 여러 대중들 앞에 서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서는 것뿐만 아니라 대중 앞에서 연설을 요구받기도 하니 그 부담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사실 대중연설은 특별한 능력이 아닙니다. 다만 얼마만큼의 경험이 있냐에 따라 긴장감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겠지요. 물론 언변이 별스럽게 뛰어나서 청중들을 울리고 웃기는 명연사도 있지만 그런 욕심은 빼고, 그냥 인사말을 할 정도의 기술이면 되는데도 그 조차 부담스러워합니다.

이런 어려움은 대중 앞에 노출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부담이 작아지겠지요. 그러니 농촌지역의 여성들이 남 앞에 서는 일이 많아지게끔 해야겠네요. 농촌여성지도자를 키우는 일을 개별의 능력에만 맡긴다면? 지금의 상황보다 나아질 리가 없겠지요. 상당수의 배포 있고 자신감이 넘치며 섬세하고도 야무진 여성들의 힘이 사장되고 말겠지요. 이 힘이 농촌 발전에 보태지면 훨씬 꿈틀거리는 농촌이 될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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