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시장은 아직도 중앙집권시대

서울·대전 도매시장 개혁
농식품부 벽에 막혀 제동
자치권 과도한 억제 비판

  • 입력 2019.04.01 00: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방자치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연 지 20년이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주창하며 보다 폭넓은 권한이양을 시도하고 있다. 과정이 순탄치는 않지만 최근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을 추진하는 등 재차 의욕을 높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농산물 도매시장만큼은 이같은 시대의 흐름에서 격리돼 있다. 특히 민간 도매법인들의 공공성을 제고하려는 지자체의 도매시장 개혁 시도가 번번이 중앙정부에 가로막히면서 지자체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중앙도매시장의 도매법인들은 합법적 독과점 지위와 안정적 수수료 수익구조로 인해 매년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시장 내외에서의 공익적 역할이나 생산자·소비자에게의 이익 환원엔 인색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버젓이 투기성 자본이 침범한 2015년 가락시장 동부팜청과 사례와 지난 2월 구리시장 구리청과 사례는 공공성보다 수익성에 치중하고 있는 공영도매시장 도매법인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의식이 있는 개설자들이 도매법인 공공성 제고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상황이 뜻 같지 않다. 서울시(시장 박원순)는 최근 시장도매인제 도입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장도매인제는 도매법인의 경매제에 경쟁요소를 부여할 새로운 거래제도다. 이미 2000년 농안법 개정으로 국회가 길을 터 놨고 2013년 무렵부터 가락시장 도입 논의가 무르익었지만 농식품부의 승인을 받지 못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해당사자와의 합의’를 승인의 전제조건으로 걸었지만 도매법인들의 완고한 반대를 감안하면 사실상의 불승인 조치다. 시장도매인 점포를 포함한 가락시장 도매권역 시설현대화 공사가 임박해 서울시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대전시(시장 허태정)는 도매법인 공모제 도입이 연거푸 가로막혔다. 도매법인 지정기간 만료 시 재지정 대신 공모를 실시해 도매법인에 대한 개설자의 관리수단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농식품부로부터 최근 최종적으로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도매시장 안정성 훼손 우려’가 주된 이유다. 대전시의 공모제는 도매법인을 추출할 목적이 아닌 공익성을 강화할 목적이지만, 농식품부가 대전시의 공정한 관리능력을 신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거래제도와 도매법인 지정조건 등 중앙도매시장의 37개 업무규정에 대한 승인권을 갖는다. 도매법인을 지정취소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인 도매시장 평가권도 농식품부에 있다. 뿐만 아니라 농식품부 소관인 농안법 시행규칙은 개설자의 권한을 지나치게 축소하거나 모호하게 규정함으로써 개설자-도매법인 간 숱한 법적 분쟁의 화근이 되고 있다. 도매시장 관계자들의 거듭된 문제 제기에도 개정은 좀체 이뤄지지 않는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도매시장 개설자의 자치권을 지나치게 억제하고 있다. 도매법인이 갖는 문제가 계속해서 드러나도 개설자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호소했다. 다른 관계자는 “도매시장을 운영하는 비용이나 책임은 모두 개설자의 몫인데 권한은 농식품부가 갖고 있다. 이럴 거면 왜 도매시장을 지자체에 맡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관료적폐는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된다. 공교롭게도 서울시와 대전시 모두 수장이 ‘개혁정부’로 대표되는 정부 여당 소속이고 시의회 또한 여당이 석권하고 있다. 대통령과 지자체가 모처럼 ‘지방분권’과 ‘개혁’이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그 사이엔 농식품부가 있고, 도매시장 개혁은 여전히 꽉 막혀 있는 상황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