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탁의 근대사 에세이 12] 식민지 수탈이 시작되다
[최용탁의 근대사 에세이 12] 식민지 수탈이 시작되다
  • 최용탁 소설가
  • 승인 2019.03.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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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회 >
 

18세기 중반 인도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프랑스에게 승리한 영국은 거대한 면화 생산기지와 소비시장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으나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영국 자본가들을 괴롭혔다. 수천 년을 이어온 숙련된 인도 방직공들이 생산한 면직물이 너무도 뛰어난 품질을 자랑했던 것이다. 오히려 인도의 면직물이 유럽의 부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자 자본가들은 해결책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해결책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기계를 통한 생산, 즉 증기기관의 개발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인도 방직공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것이었다. 총칼로 위협하는 가운데 길게 줄을 서서 자신의 손가락이 잘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잘린 손가락으로 채워진 가마니, 이게 바로 적나라한 식민지의 모습이었다.

영국의 식민지 수탈에 방해가 되었던 것이 인도인의 손가락이었다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일제가 제일 먼저 잘라가고자 한 것은 바로 땅이었다. 일제는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본받아 동양척식회사, 그러니까 동양에서 식민지를 개척한다는 의미를 가진 기관을 설립한다. 1908년 12월에 설립된 동척은 겉으로는 조선왕조가 30%의 지분을 가진 회사로 출발하였다. 총 자본금 1,000원 중에 300원에 해당하는 국유지를 출자하였지만 목적은 일본이 식민지에서 토지와 금융을 장악하고 일본인들의 식민지 개척 및 활동을 돕는 것, 곧 일본 제국의 식민지 착취를 위한 기관이었다. 동척이 세워질 때만 해도 조선은 법적으로 완전한 식민지가 아니어서 식민지 수탈을 공식화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선 척식’이 아니라 두루뭉수리하게 동양이라는 말을 넣은 것에 불과했을 뿐 그 내용은 조선의 수탈이었다.

을지로에 있던 동양척식회사.
을지로에 있던 동양척식회사.

동척은 확보한 자본금으로 대량의 토지를 헐값에 사들여 불과 1년 사이에 2만여 정보의 토지를 확보했다. 동척은 식민지 기간 내내 그 규모가 확대되어 활동지역은 이후 만주까지 확대되고 중일전쟁 이후에는 또 다른 식민지인 타이완, 사할린, 남양군도 등으로 영업지역이 확대되었다. 동척이 한 일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들의 업무는 일차적으로 토지를 사들이고 그 땅을 직접 경영하거나 임대를 주거나 그 위에 건축물을 지어 다시 매매 혹은 임대를 주는 식이었다. 또한 일본인들을 조선에 이주시켜 그들에게 토지를 분배하며 필요한 자금을 대주는 역할도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은 일본인들에게 ‘동양의 엘도라도’가 되어 한 몫을 잡아보겠다는 투기꾼들이 대거 유입되게 된다. 청일, 러일 전쟁에 참여했던 호전적인 군인 출신들이 그들에게 익숙한 조선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동척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빠르게 조선의 토지를 잠식하여 병합 직전에 이미 40만 정보의 땅을 장악했다. 당시 등록된 국유지가 100만 정보였으니 그 규모는 엄청난 것이었다.

일본으로 실려가는 쌀들.
일본으로 실려가는 쌀들.

동척은 주민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부사업을 통해서도 막대한 토지를 강탈했다. 돈을 빌려줄 때는 오로지 토지만을 담보를 잡았는데 원금을 갚는 기한이 고작 3개월이었다. 기한을 넘기면 즉시 토지문서가 동척으로 넘어갔고 농민들은 속절없이 땅을 빼앗기고 동척의 소작인으로 전락하였다. 일제는 1910년에 들어서면서 소위 토지조사사업이라는 것을 벌이는데 명분은 조세의 균등과 지적을 명확하게 한다는 것이었지만 역시 그 본질은 토지의 수탈이었다. 사실 조선 사회는 토지의 소유권이 불분명한 사회였다. 양반들은 재산권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차명으로 소유하는 경우가 많았고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토지를 감추는 일도 흔했다. 한 마디로 아주 허약한 소유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과 3개월 안에 모든 토지를 신고하라는 토지조사사업은 그 자체로 땅을 빼앗겠다는 선언이나 다를 게 없었다. 게다가 문맹률이 80%에 이르는 민인들이 무슨 수로 복잡한 양식에 맞추어 신고를 할 것인가. 바야흐로 삼천리 전역에서 피울음이 터져 나오는 식민지 강도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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