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지 않길

  • 입력 2019.03.24 18:00
  • 기자명 배정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국한우협회의 OEM 사료 사업이 순항하고 있다. 지난 1월 전북 완주군지부를 통해 농가에 공급을 시작한 협회 OEM 사료는 2월 충북 충주시지부에 이어 이달 초 옥천군지부도 사업에 참여했다.

한우협회는 생산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료가격의 결정에 농가가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으며, 가격 결정 체계까지 불투명해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OEM 사료 사업을 기획했다. 이에 하림의 계열사인 선진과 손을 잡고 직접 사료 생산을 시작했다. 한우협회는 “생산비를 낮춰 경쟁력을 향상하라면서 정부나 농축협이 한 일이 없으니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겠다”며 사료가격 결정체계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사료시장에서 가격 견제기능을 수행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하지만 한우협회가 선진과 손을 잡자 ‘눈엣가시인 농협 견제하겠다고 대기업의 한우사업 진출을 돕는 꼴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를 인지한 한우협회 김홍길 회장은 “김홍국 회장으로부터 하림이 직접 소 사육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여기엔 내심 하림을 경계하는 의미도 있었을 터다.

지역주민의 반대에 난항을 겪고 있으나 하림의 계열사 선진은 경기 안성시에 축산식품복합 일반산업단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하루 소 400마리와 돼지 4,000마리를 도축할 수 있는 도축장도 지어진다. 이미 하림은 소 도축 능력을 계획하고 있다.

물론 하림이 직접 소를 사육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닭이 그랬고 돼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사 공장에서 나온 사료를 공급하면서 한우농가 몇 곳만 자사 도축장으로 끌어들이면 수직계열화는 순식간에 이뤄질 수 있다. 한우농가도 하림의 소를 키워주는 축산노동자로 전락할 여지는 너무나 충분하다.

지역축협이 한우를 위탁 사육하는 것은 지지부진하더라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민간 기업이 손을 대는 순간엔 이미 늦는다. 농가 스스로 생산비를 낮추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쏟은 것은 박수를 쳐야 마땅하지만 정말 박수를 칠 때가 맞는지 조금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이유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