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로 북녁땅 논갈이 하고 오겠다”
“트랙터로 북녁땅 논갈이 하고 오겠다”
  • 심증식 편집국장
  • 승인 2019.03.24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사람 ㅣ 신성재 전국농민회총연맹 조국통일위원장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은 판문점선언 1주년 되는 4월 27일 일단락 지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모금해서 마련한 트랙터를 가지고 북으로 갈 계획입니다. 트랙터로 논·밭갈이를 해야 할 시기잖아요. 판문점선언 1주년에 맞춰 임진각으로 트랙터를 끌고 갈 예정입니다. 물론 미국의 대북제재 때문에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래도 시도해 봐야죠. 트랙터 가져다 주는 것이 안 되면 북녁땅 연백평야에 가서 논갈이 해주고 다시 끌고 내려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농민들이 가서 논갈이 해주고 오는 것은 열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 “전망 밝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해 새로운 지도부가 출범하면서 주요 사업의 하나로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을 결정했다. 그동안 전농은 꾸준히 통일사업을 전개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에는 남북농민통일대회라는 대규모 남북농민 상봉행사를 3차례나 개최했다. 아울러 북측의 식량생산에 도움을 주고자 못자리 비닐 보내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파탄 나고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남북 농민들의 교류 역시 단절됐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전농은 매년 봄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과 함께 통일모내기 행사를 통해 통일농사를 지어 왔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통일농사를 꾸준히 지으면서 통일의 열망을 이어갔던 것이다.

촛불항쟁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남북 대결을 청산하고 평화로의 전환이 절실한 시기에 전농은 과감한 통일운동을 제안했다. 그것이 바로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이다.

“트랙터는 농업에 있어 여러 가지 상징성이 있는 농기계입니다. 중대형 농기계로서 농업에서 중추를 담당하고 있어요. 그리고 대북제재 국면에서 트랙터는 제재 대상이냐 아니냐 경계에 서 있는 물품입니다. 지난해 중국 심양에서 북측관계자를 만났을 때 물어보니 북에서도 트랙터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트랙터는 묵은 땅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려 농사를 짓게 합니다. 통일트랙터는 그동안 묵은 남북 간의 긴장과 대결을 갈아엎고 통일의 씨앗을 뿌려 평화의 농사를 짓겠다는 농민들의 의지가 담긴 것입니다.”

전농이 지난해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을 제안할 때만 해도 전농 안팎에서는 우려와 회의가 적지 않았다. 트랙터 한 대 가격이 4,000만원에 달하는데 50대, 100대를 농민들 모금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이 쉽겠는가 하는 현실적 우려와 더불어 설사 트랙터를 장만한다 해도 북에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있었다.

그러나 4.27 판문점선언을 비롯해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6.12 북미정상회담까지 이어지면서 우려와 회의는 희망과 기대로 바뀌어가고 있다. 남북, 북미관계가 변화되면서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이 힘을 얻게 됐다.

“현재 남북문제, 북미문제의 핵심은 그동안 미국이 쳐놓은 제재를 정리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대북제재로 비춰지지만 실상은 남한에 대한 제재이고 남북교류를 막는 제재입니다. 우리 민족 간의 통로를 막아서는 제재입니다. 이것을 다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한 싸움을 하는 곳이 아직 없어요. 그래서 전농이 가장 먼저 구체적 방법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전농이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을 전개하게 된 배경을 신 위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남북 농민들이 만나 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인 품앗이를 하자는 것이다. 품앗이를 통해 남북 농민들이 겪고 있는 서로의 어려움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트랙터로 미국의 대북제재를 풀어내자는 의미가 이 운동의 목표이다. 이러한 취지에 대해 각계의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신성재 전농 조국통일위원장은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은 남북 간의 긴장과 대결을 갈아엎고 통일의 씨앗을 뿌려 평화의 농사를 짓겠다는 농민들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성재 전농 조국통일위원장은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은 남북 간의 긴장과 대결을 갈아엎고 통일의 씨앗을 뿌려 평화의 농사를 짓겠다는 농민들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지사·교육감도 힘을 보태고

“지역별로 편차는 있지만 반응이 좋은 편입니다. 통일사업에 조심스럽던 행정기관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도지사, 교육감 그리고 시장 군수까지 적극 나서서 힘을 보태고 있어요.”

전농 중심의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은 올해 들어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방행정에서 참여하기 시작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 김영록 전남도지사,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도별 운동본부에 고문 또는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많은 지역의 교육감들도 운동본부에 이름을 올렸다. 전농이 하는 사업 특히 통일사업에 도지사와 교육감이 함께 하는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대해 신 위원장은 “남북교류와 관련해 꿈틀대는 이때 뭔가 해야 하는데 공간이 안 열려 답답해하던 차에 전농에서 손을 내미니 반갑게 잡은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일을 굳이 전농이 어렵게 결심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아직은 행정기관에서 트랙터를 지원하지는 않고 있다. 전농이 벌이는 다양한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통일트랙터 마련을 위한 쌀 판매사업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행사에 참여해서 지지해주고 격려해주고 있지요. 지금은 행정기관에서 구체적 지원을 못하고 있지만 대북제재가 풀리고 교류협력사업이 열리게 되면 도에서 트랙터를 사서 보내겠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강원도의 경우 가능한 사업들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금강산에서 남북이 만나 농업과 축산에 관한 토론회를 도청과 농민단체가 함께 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각계 지지로 트랙터가 모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모은 트랙터는 32대입니다. 4월 27일에는 40대 정도 모일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북으로 트랙터를 보낼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정도 모은 것은 굉장한 힘이 모아진 것입니다. 실제 북으로 트랙터를 보낼 수 있는 분위기만 감지되면 단숨에 두 배 세 배로 커질 것입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100대는 무난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선 ‘통일트랙터 운동 좋은 사업이다 지지한다. 그런데 북에 트랙터를 가지고 갈 수 있나’ 이런 문제제기가 많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정부가 허락하지 않는 대북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도지사, 시장, 군수들이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을 지지는 하지만 구체적인 참여는 유보하고 있다. 대북제재가 해제돼 북으로 트랙터가 갈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지방정부 참여는 들불처럼 확산되리라 본다. 이는 지방정부뿐 아니라 농업관련기관, 단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농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에 나서고 있다. 우선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본부에 참여하는 시민사회단체를 통한 모금운동과 더불어 ‘통일쌀 1+1운동’을 하고 있다. 통일쌀 1+1운동은 시민들이 통일쌀을 10kg 또는 20kg 단위로 구매하면 절반은 구매자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고 절반은 기금으로 적립하는 방식이다. 통일쌀 10kg을 3만원(밥 한 공기 300원)에 구매하면 5kg는 구매자가 원하는 곳으로 5kg은 기금으로 적립하는 것이다.

통일쌀을 통해 통일에 대한 시민들의 마음을 모으고 한편으로는 농민들이 주장하는 밥 한 공기 300원 보장 운동에 동참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통일쌀 1+1운동은 지역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아울러 농민들은 ‘통일트랙터 시승식과 후원 밥집’ 등 다양하면서도 친근한 활동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로 평생을 일본과 싸워 오신 고 김복동 할머님의 장례식을 마치고 시민 조의금 일부를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에 보태달라고 보내주셨어요. 할머님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더욱 열심히 통일운동에 나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그리고 지난 9일에는 ‘정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에서 성금을 보내왔어요. 이분들은 우리가 후원을 해 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도움을 받게 돼 너무 죄송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렇듯 통일트랙터 품앗이 운동은 각계의 지지와 성원을 받으며 커가고 있다.

전농 강원도연맹 의장 ‘세 번째 연임’

신성재 위원장은 현재 전농 강원도연맹 의장을 겸하고 있다. 아니 강원도연맹 의장을 하면서 지난해 7월부터 전농 조국통일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춘천에서 청년운동을 2년 정도 하다가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고향인 홍천에 정착했어요.” 신 위원장은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그 시절 대부분 그렇듯이 신 위원장 역시 학생운동을 하게 됐고 그것이 자신의 삶의 방향이 됐다. 고향이 강원도 홍천이지만 아버지는 목수 일을 하셨다.

“말년에 아버지께서 농촌으로 들어가서 농사를 지으셨어요. 그러다 돌아가시는 바람에 다시 읍내로 나오게 되었지요. 그래서 농촌에 연고가 있다 할 수는 없었는데 결혼하고 농민운동 하겠다는 생각으로 농사를 시작했죠.”

신 위원장은 농촌에 들어와서 5년간은 농사에 전념했다고 한다. 기반을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5년간 농사만 지었어요. 그런데 당시에 농민회가 농약방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농민회는 풍비박산이 났죠. 그래서 몇 분의 선배들이 농민회 수습에 나서면서 저도 옆에서 돕기 시작했어요. 그게 인연이 되면서 농민회 사무국장을 하게 되고.” 홍천군농민회가 위기에 처하자 신 위원장은 농민회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군농민회 사무국장 마치고 자연스럽게 도연맹 사무처장을 하게 됐어요. 사무처장 할 때가 2003~4년이었는데 한-칠레 FTA 국회비준, 쌀 재협상 등 굵직한 농업문제가 부각됐을 때입니다. 2003년에는 1년간 114번이나 서울에서 집회가 있었어요. 일 년의 절반을 나가서 살았죠. 그렇게 도연맹 사무처장을 마치고 지역에 내려가 몇 년 차분히 농사에 전념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3년 지나서 농민회가 또 풍비박산 나는 일이 생겼어요. 농민회 사무국장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면지회장을 폭행하는 사건이 터진 거예요. 그러다보니 농민회가 무너지게 됐죠. 비대위 꾸려 농민회 복원에 나서야 했죠. 그 당시 이계형이라는 분이 회장 맡아 주시고 내가 사무국장 하다가 1년 후 회장을 맡게 됐어요.” 신 위원장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홍천군농민회의 위기의 순간마다 농민회를 복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30여년 농민운동의 역사 속에서 시군농민회의 부침은 끊이지 않았다. 홍천군농민회가 위기 속에서도 다시 모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신 위원장은 “농민회가 두 번씩이나 엎어졌는데 다시 복원될 수 있는 것은 활동가들의 노력보다 그런 상황에서 농민회 활동을 지지하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회원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해줘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신 위원장은 홍천군농민회장을 마치고 강원도연맹 의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해 3번째 연임을 하게 됐다. “전임 의장이신 전기환 의장님께서 2번 연임하시고 저는 3번째 연임하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 사태로 중심이 흔들릴 상황에서 누군가 딱 버텨야 했고 그 때 제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어요. 그게 하필 나였나, 다른 사람이었으면 더욱 좋았겠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요.” 강원도연맹에는 여전히 정치적 입장에 관한 이견이 존재한다. 그것을 통합하는 일이 신성재 의장의 가장 큰 역할이다.

“무엇보다 몇 가지 사업을 통해 힘을 모아가려고 해요. 작년 올해 농민수당과 통일트랙터 품앗이 사업을 중심으로 마음을 모으려고 해요. 씨앗을 뿌리면 수확을 해야 하듯이, 농민수당 문제도 통일트랙터 품앗이 사업도 끝까지 책임을 지고 해내는 경험을 갖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을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면 조직도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