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바보 같은 농사

  • 입력 2019.03.24 18:00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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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심문희(전남 구례)

코피가 터졌다. 오랜만이다.

20여년 꽃 농사를 지었다. 이유인즉슨 쉬워 보여서란다. 결혼 후 자연스레 꽃밭에서 꽃을 따며 보냈었다. 안개, 후리지아, 카네이션, 국화, 칼라 그리고 이어진 양액재배 장미에 수국까지 청춘을 꽃과 함께 지냈던 듯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수없이 많은 고민 속에 과감히 양액베드를 걷어내고 친환경 먹을거리 농사를 시작한 게 어언 10년이 되어간다. 지속가능함의 시작이 ‘환금’으로부터 가능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10여년을 이어온 친환경 인증이 작년 말 비산을 증명하지 못해 취소되었다. 학교급식에 생협까지 납품처의 문이 굳게 닫혀버렸다. 공판장에선 어제만 해도 유기농이었던 것을 알아봐 주는 이는 없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며 지난겨울 인접한 산의 소나무 잎 일명 솔까리를 갈퀴로 모아 고랑 고랑 덮어주었다. 제초에 효과가 있단다. 덕분인지 밭고랑에 풀이 덜 나며 싹이 터 크더라도 뿌리 힘이 없어 쉽게 뽑힌다. 일손을 많이 덜어주고 있다. 부엽토를 섞어 감자 삶아 먹이를 보충하며 미생물과 액비를 만든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더 이상 사용하지 말자. 정부 인증과 상관없이 더 철저하게 스스로의 약속을 다진다.

생협의 자주인증을 통해 지난달 말부터 몇 품목의 출하가 재개되었다. 돈 달라는 딸들의 전화가 두렵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올봄 채소농가들이 폭락한 가격에 혹독한 춘궁기를 보내고 있다. 다 자란 자식 같은 작물을 갈아엎고 있다한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아니 나름 고민하며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갈아엎으려면 주위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기라도 하지.”

‘나눠주기라도 하지.’ 이명처럼 지속적으로 들리는 소리다. 이런 날이면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느낌의 통증이 온다. 내가 생산한 농산물에 직접 가격 한 번 매겨보지 못하는 주제에 모든 책임은 왜 내가 져야 하는 거지?

비라도 오는 날이면 읍내 병원마다 북적북적 앉을 자리도 없이 차지하고 있는 이들, 그들도 사람이다. 기계처럼 해 뜨면 일어나 하루 종일 들판을 헤매다 해 지면 집으로 들어가는 이, 그들이 농민이다. 자식 같은 농사 애지중지 키워내는 이들이 농민이다.

대를 이어 농업을 지속해왔던 이들이 사는 곳 농촌, 초고령화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대를 이어 갈 이가 없다. 바보 같은 농사, 내 대에서 끝내고 싶으신 것이다.

코에서 나오는 것이 코인지 피인지도 모르고 장갑 낀 손으로 연신 풀어댄다. “어 뭐야” 피범벅이 된 장갑을 한참 후에야 발견하고 누가 볼세라 황급히 세수를 한다. 덕분에 허리 펴고 미세먼지 그득한 하늘을 본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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