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우표① 우표 한 장으로 읽는 역사

  • 입력 2019.03.24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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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만일 자녀가 학교에서 이런 숙제를 받아왔다고 치자.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대 중반에 서울에 거주하던 사람이, 전라북도의 한 농촌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그 편지가 서울의 우체국을 떠나서 수취인이 살고 있는 그 지방의 우체국에 도달하기까지는 얼마 동안의 시일이 걸렸을 것인지 조사해 오라.

자, 우리는 이 아이의 숙제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백과사전을 뒤적거리거나, 혹은 행정안전부나 우정사업본부 관계자에게 문의를 해 봐도 신통한 답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울 종로에 있는 광화문우체국 10층에는 ‘한국우취연합’이라는 간판을 단 사무실이 있다(내가 취재하러 갔던 2002년도에는 서울중앙우체국에 들어 있었다). 이 우취연합의 김동권 회장(1923년생)이, 서랍 속에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던 낡은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 놓았다. 김 회장은,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배어나는 그 고색창연한 봉투를 내게 보이며 설명을 시작한다.

“이 봉투에 적힌 주소를 보세요. 서울 경성부 현저동에 사는 사람이 전라북도 정읍군 산외면으로 보낸 편지예요. 봉투에 두 개의 일부인이 찍혀 있지요? 소화9년 11월 7일에 발송했는데 다음 날인 11월 8일에 도착했어요. 하루밖에 안 걸렸어요.”

그러니까 발송지의 우체국인 서울우체국에서 우편물을 접수할 때 우표 위에다 찍은 ‘날짜 고무인’ 즉 일부인(日附印)과, 수취인이 살고 있는 정읍우체국에서 외부로부터 전달된 우편물에 찍는 ‘도착 일부인’의 날짜를 비교해 보면, 그 편지가 단 하루 만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가 있다.

소화(昭和)는 일왕 히로히토 시대의 연호다. 소화 9년이면 일제강점기이던 1934년인데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우편물이 매우 빨리 전달됐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정읍은 당시에도 호남선의 기차역이 있던 지역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서울의 우체국에서 정읍의 우체국까지’ 걸리는 시간이 그렇다는 얘기고, 편지 쓴 사람이 우체통에 넣은 편지가 실제 수취인의 집에까지 배달되려면 아마 이틀 혹은 사흘쯤은 걸리지 않았을까?

이렇듯 옛 편지봉투 한 장에서 당시의 교통·통신의 사정을 어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봉투에 붙은 우표를 통해서는 그 시기의 인쇄술과 제지산업, 미술 디자인의 수준까지를 가늠해 볼 수가 있다는 것이 김동권 회장의 설명이다.

우표는 단순히 우편물 발송에 대한 요금을 징수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수단만이 아니라, 그 우표가 만들어지고 통용됐던 시대의 다양한 면모를 읽어낼 수 있는 귀중한 역사자료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난 시절 우리가 사용했던 우표에는 대통령 얼굴이 왜 그렇게 자주 등장했을까? 50여 년 동안 우표 수집가로 활동해온 김갑식 씨(1935년생)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가 선진국이라 일컫는 나라들의 우표발행 경향을 보면, 일단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은 우표에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948년 7월 24일자로 발행한 초대대통령 취임 기념우표에 이승만의 초상이 등장한 이래, 매우 오랜 기간 동안 대통령이 우표의 전속 모델이었지요. 특히 박정희 시대에 이른바 그 ‘대통령 우표’가 전성기를 이루는데, 외국에서 정상이 오면 두 사람 얼굴이 나란히 찍힌 사진을 넣어서 ‘○○○ 대통령(수상) 방문기념’의 우표를 발행하는 것이 의례적이었어요. 우리 수집가들은 그런 우표는 거들떠도 안 봐요.”

우표를 통해서 당대의 정치 상황까지를 읽어낼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우표는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사용했으며, 그 우표들 속에 또 어떤 사연들이 숨어 있을까? 우표수집 취미인들의 모임인 ‘우취연합’의 김동권 회장과, 우표수집가 김갑식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우표, 그 얘기를 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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