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탁의 근대사 에세이 11] 항일 언론의 표상, 배설

  • 입력 2019.03.18 09:28
  • 수정 2019.04.05 11:15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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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우리나라 언론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변전을 보여준 신문은 매일신보였다. 일제가 조선을 병탄한 이후 총독부 기관지로 악명을 떨친 이 신문의 전신은 대한매일신보였다.

1904년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사사건건 일본의 침략에 반대하는 논조를 폈고 발행부수 또한 상당했다. 이토는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일필이 한국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 그 중에도 일개 외국인의 대한매일신보는 일본 시책을 반대하고 한국인을 선동함이 계속되고 끊임이 없으니 통감으로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항일언론인이었던 영국인 배설.
항일언론인이었던 영국인 배설.

이토가 말한 일개 외국인이 바로 배설이다. 본명은 어네스트 토마스 베델. 1968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영국인이었던 그가 어떻게 가장 강력한 항일 신문이었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영문판 <코리아데일리뉴스>를 오년 넘게 운영했던 것일까.

배설은 1872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가정 사정으로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완구점을 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일본으로 와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무역업을 하며 일본 사람들에게 억울한 소송을 당하는 등 일본인에 대해 깊이 실망하게 된다. 1904년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 그는 세 차례나 피소되어 법정에 서는 등 일본에 대한 환멸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러일 전쟁이 터졌고, 그는 1904년 런던 데일리 뉴스의 통신원으로 취직되어 그해 2월에 한국으로 온다. 이 전쟁에서 이긴 쪽은 일본이지만, 배설은 일본의 마수에 의분을 느끼고 이에 맞서 싸울 수단은 언론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신문을 창간한 배설은 일본의 침략정책을 과감히 비판, 조선인의 의분을 깨워 배일사상을 고취시켰으며 일본의 침략행위를 낱낱이 폭로하였다. 특히 을사늑약 이후 친일 대신들에 대한 격렬한 비판으로 유명했다. 당시 신문의 필진으로는 민족주의자들인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안창호, 장지연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대한매일신보가 있었기에 자신들의 주장을 널리 펼칠 수 있었다.

일제로서는 몹시도 괴로운 일이었다. 배설이 다름 아닌 동맹국인 영국 사람이었고 두 나라 사이에는 치외법권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직접적으로 탄압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일제는 신문의 스티븐스 저격 사건 기사를 꼬투리 삼아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시켜 배설을 영국 영사 재판에 회부하였다. 상하이에 있는 영국 영사관에서 재판을 받고 3주 간의 금고 형을 받은 배설은 그 후유증인지 한국으로 돌아온 후부터 심장병을 앓았고 결국 이듬해인 1909년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불과 서른일곱이었고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묻혔다.

배설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와 대한매일신보의 영문판.
배설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와 대한매일신보의 영문판.

배설은 임종 순간에 대한매일신보 기자의 손을 잡고 “나는 죽으나, 신보(申報)는 영생케하여 한국동포를 구하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죽는 순간까지도 신문발행이 조선 독립의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진정한 언론인의 모습이었다. 배설과 함께 신문사 운영을 도왔던 그의 부인이 신문사를 계속하려 했지만 결국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 신문은 ‘대한’이라는 두 글자를 떼고 매일신보가 되어 총독부 기관지로 몰락하고 말았다.

서른일곱 살에 이국 땅에서 눈 감은 벽안의 청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곰곰 생각해본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운 많은 숫자의 외국인들이 있었다. 심지어 그 중에 상당수는 일본인들이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국가나 민족에 속하게 되지만 그 정신마저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내 조국이라 하더라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인간 보편의 정신을 억압할 때는 그에 저항해야 하는 게 윤리적 선택이다. 같은 의미로 일제강점기 전반에 걸쳐 일본 내의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세력은 끊임없이 반제국주의 투쟁에 나섰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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