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헌의 통일농업] 남북농업협력, 경색국면을 넘어서는 준비를 해야…

  • 입력 2019.03.17 18:00
  • 기자명 이태헌((사)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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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헌 (사)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이태헌 (사)통일농수산사업단 이사

하노이 북미회담은 의미있는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우리 정부가 구상하던 ‘새로운 한반도 체제'로의 로드맵에도 적잖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번 북미회담에 큰 성원을 보냈던 우리 국민들은 안타까움을 넘어 매우 불편한 심정이다. 남북농업협력을 준비하던 농민단체와 농민들도 낙담이다.

남북 간의 농업협력은 영농철을 앞두고 시작되어야 제격을 갖춘다. 이제 이 시기를 놓쳤으니 본격적인 모양새를 갖추려면 내년에야 가능할 것이다. 남북 양측에서 농업협력 추진 동력이 상당기간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산림복원협력에 관한 세부적인 이행계획 역시 봄철이 지나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남북 농업협력을 위한 첫 단계의 추진 방식과 일정을 불가피하게 조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행스런 점은 북이 지난 6일 전국당초급선전일꾼대회에서 “경제발전과 인민생활개선 보다 더 절박한 것은 없다”며 ‘비핵화 경제건설 총력노선'을 재확인하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번 북미회담에서 당혹감을 넘어 어쩌면 모멸감을 느꼈을 북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차분한 대응이라고 하겠다. 이에 관련해 우리 정부는 북미협상의 궤도를 이탈하지는 않았다고 진단하고, 한반도의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제 남북 간의 농업협력에 있어서는 즉각적인 시행보다 오히려 준비를 착실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가능하면 남북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구상하는 것이 좋다. 또 국제사회와 공감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면 당장 눈앞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적극 추진해 볼 필요성이 높아졌다.

우선 남북농업협력을 위한 남북공동의 학술행사를 정례적으로 할 필요가 있겠다. 남북 간의 교류협력이 중단된 지 10년이 더 지났고 그동안 북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우리는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마주한 평양의 모습은 사실 우리가 미처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큰 변화를 겪었다.

남북 간의 농업협력을 위한 대토론회 또는 전문가 심포지엄에 대해서는 우리가 북에 공들여 제안할 가치가 충분하다. 여기에는 농민단체와 연구기관, 공기업, 대북지원단체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안이 좋겠다. 함께 토론하고 공감하는 자리는 평양이나 서울 또는 개성, 금강산 지역이 적절하다.

그동안 남과 북이 이러한 방식의 교류협력에는 대단히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었다. 실효성이 없는 일회성 행사에 불과하다는 판단에다 기본 통계조차 부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대북 제재와 규제 국면에서 남북이 함께 준비할 수 있는 방편으로는 이보다 현실적인 방안은 없다. 다행히 북은 그동안 국제기구의 협조 하에 지난해 기본 통계를 재정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세계적인 유명학술지에 기고하는 논문수도 크게 늘고 있어 이제는 남북이 학술행사를 할 수 있는 기반은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북의 전문인력 육성에 관한 협력이다. 남북의 연구기관이나 협회를 중심으로 전문 인력에 대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준비할 수 있다. 남북이 협의하고 상호 방문하면서 낮은 단계부터 추진하되 필요하다면 제3국에서 연수토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북은 향후에도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데 있어 우리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국제기구에 위탁하는 방안도 추진해 볼만하다.

일례로 한반도 축산기반을 통째로 흔들 수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중국의 심양에서 발병했지만 현재 남북 간은 전문 인력의 공동대응이 힘들다. 산림협력을 합의했지만 전문 인력의 교류는 없다. 종자개발과 축종개량, 농약제조, 농기계개발, 농업 인프라 조성 등에 관한 기술교류도 없다. 북이 농업기반을 상당부분 복구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제재국면 하에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관한 협력도 이제 비중 있게 이뤄져야 한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협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로는 남과 북이 DMZ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생태복원과 생태농업단지를 조성하는 협력을 꼽을 수 있다. 이 지역은 규모나 상징성 측면에서 국제기구의 연대와 참여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다. 전쟁과 대결의 공간을 새로운 평화와 생태 생명의 터전으로 바꿔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이미 세계문명사적인 전환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DMZ와 백두대간에 대해서는 이전 정부에서도 세계평화생태공원을 구상한 적이 있기 때문에 진영논리에 따른 트집도 적을 것이다. 최근 세계적으로는 이와 유사한 생태농업개발이 교육과 체험, 관광 등의 수요에 힘입어 지역경제에 활력이 된 사례가 적지 않다. 접경지역의 주민들은 오랜 기간 동안 재산권의 침해와 함께 각종 불편함을 감수해 왔다. 이에 대한 보상 측면을 감안한다면 이곳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마련하면 될 것이다. 또 이런 협력은 남측에서 먼저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북 제재와 규제 하에서도 추진이 가능하다는 측면을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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