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사과’ 받아든 산란계, 과잉생산 수렁에 빠졌다

20여년 전보다 내려간 계란가격 … “현대화사업이 빚더미에 앉게 해”
향후 정책사업, 규모화보다 제값 받을 수 있게끔 가치에 방향 둬야

  • 입력 2019.03.17 18:00
  • 수정 2019.03.17 20:06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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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계란 산지가격이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잉생산이 원인이지만 해결은 난망하다. 농가들 사이에선 축사시설현대화사업이 ‘독이 든 사과’였다는 개탄이 흘러나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산란계 사육규모는 총 6,169만마리(사육농가 1,535가구)였다. 그러나 지난해 산란계 사육 마릿수는 7,474만마리(사육농가 1,007가구)에 달한다. 농가수가 3분의 1 남짓 줄었는데 사육 마릿수는 1,300만마리 가량 늘어난 것이다. 일각에선 현재 산란계 사육규모를 통계청 조사보다 더 많은 8,000만마리 이상으로 추산한다.

축사시설현대화사업을 통해 계사를 신축하고 사육두수를 늘린 산란계농가들이 계란가격이 떨어지자 빚더미에 오르는 등 현대화사업의 부작용에 몸살을 앓고 있다. 충북의 한 산란계농장에 출하하지 못한 계란이 쌓여 있다. 한승호 기자
축사시설현대화사업을 통해 계사를 신축하고 사육두수를 늘린 산란계농가들이 계란가격이 떨어지자 빚더미에 오르는 등 현대화사업의 부작용에 몸살을 앓고 있다. 충북의 한 산란계농장에 출하하지 못한 계란이 쌓여 있다. 한승호 기자

그동안 대한양계협회는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거듭 자발적인 산란계 마릿수 감축을 호소했다. 그러나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농가들 간 입장 차만 확인하는데 그쳤다. 이에 대규모 농장 또는 현대화사업을 받아 규모가 늘어난 농장들이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한다.

5만마리 이상 사육하는 산란계 농가수는 2010년 322가구에서 지난해 430가구로 증가했으며 이들 농가의 사육규모는 지난해 6,318만마리로 전체 사육규모의 약 85%를 점하고 있다. 규모화가 진행되며 5만마리 정도의 사육규모는 이제 대규모 농장 축에 들지 못한다. 100만마리 사육규모를 갖춘 농장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이같은 농가의 규모화는 현대화사업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론이다.

충청지역에서 만난 한 산란계농가는 2014년 현대화사업을 받아 4만마리 규모의 농장을 8만마리 규모로 늘렸다. 무창계사 케이지 8단으로 시설이 현대화되면서 규모는 커졌지만 근무하는 직원 수는 8명에서 4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농장 경영은 계란가격이 폭락하며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다. 그는 “90년대에 계란 1개당 50~60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계란 1개당 가격을 40원대 후반에 받고 있다. 개당 생산비가 100원 남짓이니 적자를 안 볼 수가 없다”라며 “뒤쳐질까봐 현대화사업을 받았는데 이 사업이 농가를 빚더미에 내몰고 있다”고 탄식했다.

이 농가는 총 12억3,000만원 규모의 현대화사업을 받아 계사 2동을 신축했다. 그는 “여유자금이 있어 현대화사업을 포함해 자부담도 약 6억원 정도를 들였다. 여유자금이 이 정도는 있어야 현대화사업도 할 수 있다”라며 “계사를 신축하니 당시 융자가 6억6,000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적자를 보면서 지금은 융자 규모가 12억5,000만원이다”고 토로했다. 5년 새 빚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경영 악화엔 고병원성 AI 발생도 영향을 미쳤다. 2016년 겨울 AI가 발생한 뒤 2017년 12월에 돼서야 입식했는데 당시 병아리 1마리당 2,320원이나 줘야 했다. 계란가격이 일시적으로 반등하며 병아리 가격도 덩달아 오른 것이다. 계란가격이 폭락한 현재 병아리 가격은 마리당 800원 수준이다.

잠깐 상승세였던 계란가격은 지난해부터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 농가는 병아리까지 비싸게 들이다보니 한달 간 1억원 넘게 적자가 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차라리 현대화사업을 한다고 융자를 풀지 않았으면 이전 규모로 살았을 것이다”라며 “나중에 (현대화사업) 막차를 탄 농가는 잠도 못 잔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에 앞으로의 정책사업은 규모화·기업화보다 내실을 갖추는 데 투입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어나고 있다. 남기훈 양계협회 부회장은 “앞으로도 ICT나 스마트축산 등 정책사업이 이어지게 되는데 농가의 규모를 키우는 방향으로 투자되는 게 아니라 농장의 사양관리나 방역에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홍재 양계협회장은 현대화사업에 대해 “생산성과 방역능력 향상 등 장점도 있지만 규모화·기업화에 따른 양극화 및 가격하락 등의 부작용도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제 시설투자는 규모화가 아닌 가치향상에 방향을 둬야 한다. 생산자가 소비자들이 인정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해 생산한 축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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