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시설현대화사업이 부른 나비효과

‘생산에서 가치로, 축산 패러다임 전환을’

Ⅰ. 풍요 속의 빈곤, 축산이 위태롭다

  • 입력 2019.03.17 18:00
  • 수정 2019.03.18 10:03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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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시설현대화사업을 통해 사육규모를 2배가량 늘린 충남의 한 산란계농장의 모습. 정부 지원에 따라 규모화를 통해 이익창출에 나서고자 했던 농장주는 축사시설현대화사업 이후 빚만 산더미처럼 늘었다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막막해했다. 한승호 기자
축사시설현대화사업을 통해 사육규모를 2배가량 늘린 충남의 한 산란계농장의 모습. 정부 지원에 따라 규모화를 통해 이익창출에 나서고자 했던 농장주는 축사시설현대화사업 이후 빚만 산더미처럼 늘었다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막막해했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로 농축산물 시장이 개방됐다. 당시 정부는 농업계의 극렬한 반대에 수입개방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국내 농업에 대해서는 영세한 경영규모와 낮은 생산성 탓에 국제적 경쟁력이 없다는 평가가 내려졌고 이후 농정은 규모화·전업화, 생산성 향상에 초점이 맞춰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다양한 국가와 다양한 형태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는 농정의 필수 요소처럼 자리 잡았다.

축산부문에서는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 아래 육계·양돈을 중심으로 규모화를 위한 계열화가 진행된다. 여기에 대기업의 진출로 생산자인 축산농가는 사육만 대신하는 농업노동자 신세로 전락했다. 대기업 중심의 축산부문 수직계열화는 지금까지 농가의 이익과 편의 증대보다는 계열업체의 이윤증대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9년부터는 축사시설현대화사업이 시작됐다. 정부는 FTA 등 시장개방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축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노후화된 축사시설 개선이 필요하다며 자금 지원에 나섰다.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축산농가는 축사시설을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많게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빚을 갚기 위해 축산농가는 사육규모를 더욱 늘려야 했다.

그러나 시장개방으로 축산물 자급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농가의 생존을 위해 늘어난 사육규모는 국산 축산물 가격의 하락을 유도했다. 결국 축산농가 전체가 피해를 나누거나 경제적 능력이 비교적 좋았던 농가들은 규모를 더욱 늘려 부를 얻고 그렇지 않은 농가는 생존이 어려워지는 빈부격차의 심화로 이어졌다.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중심에 둔 축산정책이 지속되는 동안 소비자인 국민의 인식은 크게 변화했다. 내가 먹는 축산물이 얼마나 깨끗한 환경에서 얻어진 것인지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맛있는 것을 많이 먹는 것을 넘어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것이다.

<한국농정>은 생산력·경쟁력 강화 패러다임에 갇힌 축산정책의 변화를 제안하기 위해 9회에 걸친 기획연재 ‘생산에서 가치로, 축산 패러다임 전환을’을 시작한다. 첫 번째 ‘풍요 속의 빈곤, 축산이 위태롭다’ 편에서는 축사시설현대화사업의 부작용과 대기업에 종속된 채 모든 이윤을 자본에 빼앗기고 있는 축산의 현실을 지적한다. 2편 ‘바람 따라 흔들리는 축산, 이정표가 필요하다’를 통해 축산 환경개선, 동물복지 등 내·외부적 변화에 사육기반을 위협받는 축산의 오늘을 통해 지속가능한 방향을 모색하고, 3편 ‘축산을 지켜야 밥상주권 지킨다’에서는 종자보전·개량, 자급률 목표 설정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시장을 다변화한 대안축산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번호에서는 정부가 생산성 향상,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장려·추진한 축사시설현대화사업의 부작용 사례를 통해 축산정책의 전환을 촉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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