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가족계획⑤ 아세요? 인구시계탑!

  • 입력 2019.03.17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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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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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가족계획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세 갈래의 특수사업을 추진했다. 병원 가족계획사업, 사업장 가족계획사업, 그리고 예비군 가족계획사업 등이 그것이었다. 가족계획에 적극 협조한 사람들에게는 연말정산 시 세액공제 혜택을 비롯하여, 주공아파트 청약 우선권 등 각종 보상이 주어졌다.

물론 정관수술이나 난관수술을 한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인센티브라는 그것도 출산율 감소 추세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실시 초기였던 1974년에는 세 자녀를 둔 사람에게까지 혜택이 주어졌으나, 77년도에는 그 대상이 두 자녀 가정으로 축소되었고,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보상제도가 아예 사라졌다.

가족계획사업 중에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빛나는 성과를 올린 사업장(?)은 예비군 훈련장이었다. 마을이나 직장을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 없이, 자녀를 출산할 시기에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 남자들을 국방부에서 알아서 척척 집합시켜 주었으니 그 보다 더 좋은 홍보 무대는 없었다.

또한 개별적으로 병원에 찾아가는 경우 쑥스럽고 긴장되기 마련인데, 수십 명씩 단체로 몰려가다 보니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 산아제한에 별 뜻이 없던 사람까지도 덩달아 따라 나설 수 있었다. 물론 동원훈련의 경우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가족계획 홍보요원들이 집중 공략하는 대상은 일반예비군들이었다.

일찍이 1970년대 초부터 장정들의 ‘정관 묶는 일’에 종사해온 비뇨기과 의사 유태형 씨는, 그 장구한 시술이력 만큼이나 무수한 곡절을 겪었노라고 회고한다.

“한 번은 수술을 마친 예비군이 진료실을 나가자마자 병원복도에 쓰러져서 거품을 무는 바람에 한 바탕 난리가 났지요. 알고 보니 평소 간질을 앓는 사람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국소마취를 하기 때문에) 통증이 별로 심하지 않는데도, 긴장한 나머지 쇼크를 일으켜서 기절을 해버린 남자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고…. 하지만 정말로 난감한 경우는 따로 있었어요.”

두어 달쯤 전에 수술을 받았던 남자가 진료실에 들이닥쳐서는, 다짜고짜 의사의 멱살을 잡아채며 다그친다.

“당신 돌팔이 아니야? 분명히 수술 잘 됐다고 했지? 그런데 마누라가 왜 임신을 하냐고!”

“이거 놓고 얘기하세요. 산부인과에서 진찰을 받아 봤어요? 임신이 확실해요?”

“두 군데나 가서 진찰 받았어. 이제 당신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뭐라 했어요? 수술하고 나서 두 달 가량은 피임 조치를 잘 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는데, 시키는 대로 했어요?”

“아니, 수술을 했는데 또 무슨 피임조치를 한단 말이야!”

유태형 원장의 설명에 의하면, 수술을 했다고 바로 피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나와 있던 잔류정자가 문제다. 그래서 적어도 10여 회 이상은 사전에 피임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시일이 충분히 지났는데도 생명력이 아주 질긴 정자란 놈이 봉합한 정관을 뚫고 나와서는 기어코 제 임무를 완수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아주 드문 사례다.

“그나마 병원으로 달려와서 의사에게 수술이 잘못 됐다고 따지는 경우는 그래도 나은데, 의사가 얘기한 주의사항을 잘 지키지 않은 자신의 부주의는 생각지 않고, 아내부터 의심하는 경우는 사태가 심각해지지요. 바람 피웠다며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가 이혼을 당한 사례도 있었고….”

1983년도에 서울 여의도광장 한 쪽에, 없던 선전탑이 우뚝 솟았다. 인구증가에 대한 시민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세운 ‘인구시계탑’이 그것이었다. 이후 그 전광판에는 <오늘의 인구 42476316> 따위의 글자가 떠서는, 지나가는 다자녀 가장들에게 죄책감을 강요했다.

1983년 7월 29일에 처음으로 남한의 인구가 4,000만을 돌파했다. 그러다 인구의 증감이 균형을 이루었던 1990년대에 들어, 전국 16개 지역에 설치됐던 인구시계탑은 모두 철거 되었다.

그 시계탑 다시 세우면 어떨까? 그때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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